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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ㆍ짜증 되레 부추기는 ‘삼류 여의도’

입력
2018.01.05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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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밥하는 아줌마” “에라 도둑놈”

정치인들 갈등 조정은커녕 부추겨

촛불 이후 국민 눈높이 높아졌지만

정치 구태 여전…사회적 분노 키워

#2

“패륜집단 결집” “레밍 같다” 등 막말

아이들한테 설명하자니 한숨만

촛불로 혁명 이루어낸 경험으로

정치인들 변화도 이끌어내야

지난해 9월 4일 국회 본회의장 앞. 김장겸 당시 MBC 사장 체포영장 청구를 문제 삼아 본회의를 보이콧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던 중 갑자기 욕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회의장에 입장하던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장면을 휴대폰을 통해 생중계하려다 이를 막으려는 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 등과 충돌한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뭐 하는 거야” “저리 꺼져” “쓰레기” 등의 막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가까스로 진정이 됐을 찰나 또다시 한쪽 구석에서 욕설과 막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보수정당이 안보위기에 뭐 하는 짓이냐. 이렇게 하면 보수정당을 두 번 죽이는 거다”라고 도발을 한 것이다. 이에 정진석 한국당 의원이 “어디다 대고 보수를 입에 올리고 지랄이야”라고 맞받아쳤고, 같은 당 이장우 의원도 “배신자 하태경 조용히 해”라고 가세했다. 이 장면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격하게 확산돼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다. 한 종편 TV프로그램은 설전이 주고 간 배경 설명까지 곁들여 가며 하루 종일 시청자들에게 낯뜨거운 국회 상황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고 조정해야 할 정치권과 언론, 종교계가 오히려 이를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두 사람만 모이면 정치 얘기를 하고, 모든 택시기사가 정치평론가라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의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면서 사회적 분노를 키우는 진앙지 노릇을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한 해 몰락한 보수의 현 주소를 증명이라도 하듯 특히 한국당에서 막말 퍼레이드가 집중됐다. 시작은 대선 후보와 당 대표를 통해 중앙정치에 화려하게 복귀한 홍준표 한국당 대표였다. 대선 기간 경남 시민단체들을 향해 “에라 이 도둑놈의 XX들이 말이야”라고 발언해 논란을 자초한 홍 대표는 당 대표 취임 후에도 친박계 의원들을 ‘바퀴벌레’ ‘암덩어리’ 등에 비유하는 등 거친 발언으로 연일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막말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머리자르기’ ‘뗑깡’ 이란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결정적 국면마다 국민의당을 자극해 정국을 올스톱 시켰다.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의 문용식 가짜뉴스대책단장이 부산ㆍ경남(PK)을 향해 ‘패륜집단 결집’ 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 지역감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치인의 거친 표현은 국민 전체의 공분을 불러왔고 때로는 사회적 약자의 가슴에 비수가 됐다. 지난 7월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은 한 언론사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정규직 학교급식 종사자들을 가리켜,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시키면 되는 거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고 했다. ‘수해 중 외유성 연수’ 비판을 받은 김학철 전 한국당 충북도의원은 도리어 국민들을 설치류인 레밍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가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분노의 거름망이 아니라 순환 파이프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층의 극우적 혐오 표출 행태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극렬지지층인 이른바 ‘문빠’ 일부에서 나타나는 일탈적 팬덤 현상도 이런 정치권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4일 “친박이든 친문이든 계파정치가 주를 이루면서 내부 지지자들의 지지를 끌어 내기 위해 유력 정치인들이 자극적인 발언을 많이 쏟아내는 게 지금 우리 정치의 현실”이라며 “그런 정치인들이 계속 살아남는 이유를 한번쯤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촛불 정국을 통해 한껏 달아올랐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식어가는 것도 결국은 과거의 잘못된 행태로 회귀한 정치권의 실상과 무관하지 않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장인 최모(40)씨는 “정치인들의 최근 행태를 보면 촛불집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국민들의 민심을 정말 귀담아 듣는 집단인지 의심스럽다”며 “정치인들이 어른들도 입에 담기 민망한 말들을 쏟아낼 때, 촛불 집회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애들한테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화가 치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내일신문이 서베이몹에 의뢰해 지난해 10월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촛불 집회 이후 정치권이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전과 비슷하거나 못하다’는 응답이 61.1%로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답변(38.9%)보다 훨씬 높았다.

더 큰 우려는 정치권이 이런 불편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이에 편승하려 한다는 데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배울 만큼 배운 정치인들이 비난이 뻔하게 예상되는 막말과 기행을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주목부터 끌겠다는 정치인들의 심리가 결국 정치혐오를 불러오고, 이로 인해 정치인들을 선거로 심판하고 걸러내야 할 유권자들이 정치로부터 멀어지면서 극렬 지지층을 대표하는 정치인들만 계속 전면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정치권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우리는 촛불집회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면서 “이번에도 시민들이 중심이 돼 정치인들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실천에 나서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현지호 인턴기자 (성균관대 경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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