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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눈감고 간다

입력
2017.04.2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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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밤이 어두웠는데/눈감고 가거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두운 밤에 눈감고 걸어본 사람입니다. 어둠 속 어둠이 되어 본 사람입니다. 어둠 속 어둠에서 내미는 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공감 능력이라고, 소통의 진정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존엄이 아니라 당신의 존엄을 지킨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켜야 할 존엄이 있을 때, 크나큰 비극 앞에서도 울음을 참게 됩니다.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라면 얼굴이 한없이 굳게 되고, 당신의 존엄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비극적 얼굴을 품은 나의 얼굴이 됩니다. 이 얼굴을 가져본 사람은 당신들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얼굴을 함부로 지우지 않습니다. 경험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그 지점이 더 이상 추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진 바 씨앗을/뿌리면서 가거라./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단박에 믿어지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신뢰는 그 사람의 바탕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에는 갸우뚱 할 수 있지만 그가 가진 바탕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신뢰가 깨졌다는 말은 마음이 변했다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말입니다. 그를 구성했던 바탕이 사라졌으므로 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라, 연약한 씨앗이 대지 위로 올라올 것이다.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의심없이 눈부터 뜨는, 순리가 되찾아진 세상일 것이다. 이런 선명함. 이런 신뢰.

이런 ‘사람의 봄’이 다시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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