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은경 기자

등록 : 2018.04.03 17:00
수정 : 2018.04.03 17:38

[고은경의 반려배려] 살고 싶었던 암소가 남긴 것

등록 : 2018.04.03 17:00
수정 : 2018.04.03 17:38

27일 새벽 서산의 한 도축장에서 정육업자 등을 들이받고 달아난 암소가 사건 발생 여섯 시간 만인 이날 오전 11시30분께 1.5㎞ 떨어진 태안군 태안읍 야산에서 발견됐지만 두 시간 만에 도축됐다. 태안= 연합뉴스

1주일 전 새벽 충남 서산의 한 도축장에서 네 살 된 암소가 사람을 들이받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해 온라인에서 이슈가 됐다.

소는 도축장에서 함께 있던 도축업자 등 두 명을 들이 받았고 이중 한 명은 숨졌다. 도망간 소는 여섯 시간 만인 오전 11시30분 도축장에서 1.5㎞ 떨어진 한 야산에서 발견됐고 마취총을 맞고 포획된 이후 두 시간이 조금 넘은 오후 1시50분 도축장에서 도축됐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충남도청에 연락해 구조 의사를 밝혔지만 간발의 차로 이미 소는 도축된 뒤였다.

이번 사건에서 다소 놀랐던 점은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도망쳤을까”라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숨진 것도 안타깝지만 소를 비난하기보다 소에 대한 연민의 내용도 상당했다.

어떻게 소가 포획되자마자 이렇게 빨리 도축됐는지 궁금해졌다. 사건이 난 당시는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27일 낮 12시부터 48시간 동안 전국 우제류를 대상으로 일시 이동중지 명령(스탠드 스틸)이 발동된 때였다. 원칙대로라면 도축장을 이용할 수 없었지만 이미 포획 도중에 부상을 입은 소의 상태를 고려해 긴급 도축을 했다는 게 도청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도축된 소는 마취제 성분이 남아 있어 식용으로 활용되지 못했고, 돌발행동을 한 점 때문에 소해면상뇌증(BSE) 검사를 한 후 지난달 30일 음성 결과가 나오면서 폐기처리업체로 보내졌다. 새끼를 두 번 출산한 후 번식력이 떨어진 암소의 ‘반란’은 이렇게 끝났다.

소가 도축장으로 가는 도중 죽음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은 적이 있다. 실제 본 적은 없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맞는데 다만 죽음을 직감해서인지,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단순한 생리적 반응인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 해도 국내외 사례를 보면 소가 도축장에 가는 트럭에 오르거나 도축장에 도착해서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거부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 미국 뉴욕 퀸즈에서도 도살장으로 가던 소가 탈출하면서 뉴스가 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죽음으로 끝난 서산 암소와 달리 이 소는 동물호보단체(PETA)의 도움으로 구조돼 보호소로 이동해 ‘프레디’라는 이름을 얻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소는 농장동물 복지 이슈에서도 돼지나 닭보다 후순위로 밀려 있다. 워낙 돼지나 닭의 밀집사육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소의 사육 환경은 그나마 낫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사육 환경뿐 아니라 도축도 중요한 문제인데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국내에 동물이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기준이 적용된 ‘동물복지 도축장’은 네 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가 소를 접하는 대부분은 여물을 먹고 있는 모습 아니면 접시에 담긴 고기인 채일 것이다. 여물을 먹는 소가 어떻게 접시 위 고기로 되는지 그 과정에 대해 잘 알거나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록 여섯 시간의 반란으로 끝났지만 이번 암소 사건이 우리가 소비하는 농장 동물의 사육과 도축 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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