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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만
부장

등록 : 2017.12.06 04:40

[편집국에서] 안전의식 위기대응… 변한 게 없다.

등록 : 2017.12.06 04:40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4일 오후 인천 중구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해양경찰 등 관계자들이 낚싯배 선창1호의 선미 부분을 현장감식하고 있다. 선창1호는 전날 오전 영흥면 영흥대교 인근 해상에서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돼 승선원 22명 중 15명이 숨졌다.

“(낚싯배가 알아서) 급유선을 피할 줄 알았다.” 3일 15명의 사망ㆍ실종자를 낸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를 일으킨 급유선 선장의 발언은 우리 사회의 일상화한 안전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특수 공간인 해상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세월호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수백 명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최소한 안전 의식의 중요성은 몸에 익혔을 것이라는 판단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영흥도 주변 선주들에 따르면 사고 해역인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는 예전부터 급유선과 낚싯배가 드나들어 충돌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된 터였다. 평소 인천항과 평택ㆍ대산항을 왕래하는 급유선은 폭 200m 남짓한 영흥도-선재도 사이를 가로 지르면 먼바다를 돌아가는 것에 비해 기름값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년 전부터 통행량이 부쩍 늘었다. 급유선만 하루 100여 차례 지날 정도라고 한다. 300톤 남짓한 이들 배는 큰 배로 분류되지 않아 딱히 정해진 해로가 없다 보니 지름길을 택하는 것이 일반화했다고 한다.

이 곳 해역은 수도권 낚시꾼의 인기 낚시터이기도 하다. 안산시 대부도를 거쳐 차량으로 선재ㆍ영흥도로 곧장 올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이러다 보니 주말이면 이들 낚시꾼을 실어 나르는 소형 선박의 왕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땅으로 치자면 도로에 차선이 그어지지 않은 곳에 많은 배들이 몰리다 보니 급유선과 낚싯배와의 충돌 사고 위험은 상존했지만, 교통 정리는 원활치 못했다. 두 배가 충돌가능성이 있는 선상에 놓이면 작은 배가 이동해야 한다는 정도의 암묵적인 원칙만 있었다. 급유선은 이 원칙에 기대 난폭 운항을 일삼는 사례가 많았고 낚싯배는 피해를 입을까 조바심에 떨어야 했다. “낚싯배가 피할 줄 알았다”는 급유선 선장의 진술은 언젠가 이런 사고가 생길 것을 예견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해양경찰청은 세월호 사고 대처 미숙으로 조직 와해의 수모를 당했음에도 큰 교훈을 얻지는 못한 듯 하다. 사고 때마다 제기되는 늑장 대처 의혹이 또 다시 제기됐다. 민간 선박과 어장을 정리하느라, 신형 구조선의 고장으로 육로로 이동하느라 등의 이유를 댔지만 이를 이해해줄 국민이 얼마나 있을 지 의문이다. 더욱이 해경은 사고 시간을 3일 오전 6시9분으로 발표, 이보다 앞선 6시5~6분에 사고가 났다고 보도한 언론들을 상대로 기사 정정을 요구했으나, 결국 언론 보도 내용이 맞는 것으로 드러나 망신을 자초했다.

만연한 안전 의식 부재, 관의 위기 대응 부족은 사회 곳곳에서 뿌리처럼 깊이 박혀 있다. 지난 달 포항 지진으로 일부 아파트가 사실상 거주 불능 판단을 받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외부로 알려질 경우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 쉬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투기세력들은 재건축 소문을 퍼트려 집값을 끌어올리는 등 안전을 이용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포항시는 지진으로 파손된 필로티 건물의 보강 작업에 지원하겠다는 도움의 손길을 외면했다. 특정 아파트를 도우면 다른 아파트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더욱이 포항시는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피소에 거주중인 주민들을 귀가를 종용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다행히 최근 발생한 지진 및 선박 사고를 둘러싼 정부의 대응은 일단 합격점을 줄만하다. 낚싯배 사고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가 책임”으로 인식, 안전관리 시스템 개선을 당부했다. 지진에 따른 전대미문의 수능연기 사태도 뒤 탈없이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풀뿌리 차원에서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또 다시 안전 의식과 위기대응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상황은 더 이상 재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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