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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신굿 33년ㆍ봉산탈춤 28년간 전승자 없어… “젊은 꾼 유인책 필요”

입력
2018.02.24 09: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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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쥐꼬리 지원금’에 생계 고심

전수교육조교 月 66만원 지원금

법적으로 생활비로는 사용 불가

이수자엔 내년부터나 간접 지원

#2

인간문화재 되기까지 수십 년?

138 종목 무형문화재 170명 배출

사망ㆍ질병 경우에만 신규로 선발

문화재청 “10년마다 선정 정례화”

#3

‘전승의 맥’ 정책 전환 필요

해녀에 해양스포츠 젊은층 몰리듯

삶 속에서 즐기며 전승까지 연결

일반 시민과 보유자 간극 좁혀야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해녀. 50대 후반에서 85세까지의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고 있다.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제주의 해녀학교들은 10 대 1의 입학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재미와 보람을 위해 해녀 자격증을 따려는 젊은이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무형문화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해녀. 50대 후반에서 85세까지의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고 있다.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제주의 해녀학교들은 10 대 1의 입학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재미와 보람을 위해 해녀 자격증을 따려는 젊은이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무형문화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모든 사라져가는 것은 슬픔을 안긴다. 최근 작고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것들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금선(琴線)을 울릴 때가 많다”고 쓴 바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굳어진 옛 것만 즐긴다면 그것은 전통이라기보다 골동품”이라고도 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신청자를 대상으로 선정)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들은 멸실(滅失)의 슬픔과 골동품의 무용(無用) 사이에 놓인, 사라져가는 무형문화재의 문제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아무도 전승하려고 하지 않는 소멸 위기의 무형문화재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무형문화재 전승을 통해 생계를 도모하기 어려운 취약종목 전승자들에게는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

무형문화재 전승자가 되면?

현재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는 총 138개 종목이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전통적 공연ㆍ예술 ▦공예ㆍ미술 등 전통기술 ▦한의약이나 농경ㆍ어로 같은 전통지식 ▦구전 전통 및 표현 ▦의식주 등 전통적 생활관습 ▦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儀式) ▦전통적 놀이ㆍ축제 및 기예ㆍ무예 분야에서 “민족문화를 계승,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문화재보호법 제 1조)할 수 있는 종목들이 차근차근 추가돼 왔다. 1964년 12월 7일 제1~3호로 지정된 종묘제례악, 양주별산대놀이, 남사당놀이에서 시작해 2017년 씨름, 해녀, 김치 담그기에 이르기까지 현재 총 170명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와 286명의 전수교육 조교, 6,171명의 이수자가 배출됐다. 고령이나 질환으로 전승활동에 나설 수 없는 보유자들은 명예보유자로 전환되는데, 현재 16개 종목에 총 17명이 있다.

현재 무형문화재 전승체계는 ‘보유자-전수교육조교-이수자’으로 돼 있다. 우리가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부르는 보유자는 각 종목별로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구성하는 본질적 특징인 전형(典刑)을 구현하는 최고 기량자를 말한다. 보유자는 개인 창작 및 공연 활동 외에도 반드시 후속 세대를 위한 전승활동을 펼쳐야 하는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월정 전승활동 지원비가 월 131만7,000원씩 지급된다. 탕건장(상투를 가리기 위해 갓 속에 쓰는 모자를 만드는 기술), 곡성의 돌실나이(전남 곡성에서 삼베를 짜는 기술), 낙죽장(불에 달군 인두로 대나무 표피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는 기술), 발탈(한쪽 발에 탈을 씌워서 재담을 주고 받는 연희극), 가사(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 같은 비인기종목 35개는 취약종목으로 지정돼 있는데, 이 종목의 보유자들에게는 연 1회 471만6,000 이내의 취약종목 지원금이 추가로 나간다. 취약종목 보유자들이 다른 보유자들보다 월 40만원 꼴로 지원금을 더 받는 셈이다.

인간문화재인 보유자의 전승활동을 돕는 전수교육조교는 향후 보유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유자를 선정할 때 최고의 기량 외에 신청 자격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있지만, 대부분의 보유자들이 전수교육조교 활동을 거쳐 보유자가 됐다. 5년 이상 이수자로 활동하면 조교가 될 자격을 얻으며, 이후 문화재청이 실시하는 기량평가(실기능력 테스트)와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조교로 선발된다. 조교에게는 월 66만원의 전승활동지원금이 나가며, 취약종목 조교에게는 연 1회 313만2,000원이 추가 지급된다. 이외에도 장례위로금(보유자 100만원, 조교 50만원), 입원위로금(보유자 30만원) 등 특별지원금과 공개행사 지원금이 개인종목 보유자에게는 연 1회 700만원, 보유단체에는 1,100만~1,800만원 지원된다.

생계냐 전승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사라져가는 문화재를 보전하고 전승하는 데 생을 바치는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들에게 이 지원금은 생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이 못 된다. 하지만 법적으로 그렇게 사용할 수도 없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혜택은 공적 보조금이 아닌 전승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활동경비 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잖은 전승자들이 이 돈을 생활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사용한다. 매년 국정감사나 감사원 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되는 사항이다. 문화재청은 해마다 이 같은 ‘부적정’ 지적이 반복되자 매년 2분기 사용분에 한해 전승지원금 사용내역서를 제출 받아 행정지도를 하고 있다.

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무형문화재를 계승하고 널리 저변화하기 위해서는 이수자 풀을 넓히는 게 관건이지만, 장차 전수교육조교와 보유자가 될 이수자들은 아무런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다. 입문 코스인 전수교육을 3년 이상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능ㆍ예능 심사 후 무형문화재 이수증을 발급해주는 게 전부다. 전수교육조교 지원자격을 취득하는 이수자 생활 5년 동안 스스로 별도의 생계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수자에 대한 지원책이 전혀 없는 것이 무형문화재 전승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계속돼 오자 지난해 12월 이수자에게도 공적 지원을 확대하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현재 하위법령 개정을 준비하는 중이라 구체적 지원 내용은 확정된 바 없지만, 공연이나 전시 비용 일부 보전 등 간접지원 방식으로 정해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원금으로 더 많은 효과를 내고 전승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간접지원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법안을 심사한 국회는 물론 문화재청의 입장”이라며 “구체적 지원방안을 확정해 예산을 확보하는 내년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을 통해 집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낙죽장(烙竹匠). 보유자 한 명에 전수교육조교 0명, 이수자 2명뿐인 전승취약종목이다. 문화재청 제공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낙죽장(烙竹匠). 보유자 한 명에 전수교육조교 0명, 이수자 2명뿐인 전승취약종목이다. 문화재청 제공

인간문화재 되려면 수십 년 기다려야

인간문화재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신규 선발은 더디기만 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1호 진도 다시래기(부모상을 당한 상주들의 슬픔을 덜어주는 상여놀이)와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선원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정월 굿) 및 대동굿(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정월 굿)은 33년이 지나도록 신규 보유자 선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봉산탈춤과 전통장(화살통을 만드는 기술) 28년, 고성 농요 25년, 백동연죽장(백동을 땜질해 담뱃대를 만드는 기술)은 24년, 태껸과 문배주 22년, 입사장(금속기물의 표면을 작은 정으로 쪼아 다른 금속을 끼워 넣거나 덧씌워 무늬를 놓는 기술)과 누비장(누비옷 만드는 기술), 승전무(이순신의 충의와 덕망을 추앙한 궁중의 북춤)는 각각 21년간 보유자가 나오지 않았다. 보유자가 사망하거나 명예전환자로 전환돼야 신규 충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권과 다툼도 끊이지 않는다. 인간문화재가 된다는 것은 해당 예능ㆍ기능 분야의 최고 1인자임을 국가가 인증한다는 뜻이다. 최고의 권위를 얻게 될 뿐 아니라 각종 전승교육을 도맡아 할 수 있다. 전승지원금이 많지 않아도 전승활성화 종목은 제자 양성을 통해 세 확대와 수익 창출이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인간문화재는 선정 때마다 각종 투서와 이의 제기가 잇따르는 등 갈등이 만만찮다. 살풀이춤은 2002년 인간문화재 김숙자가 작고한 이후 보유자 후보 2명이 선정됐지만, 최종 1인이 선정된 인정예고 기간 중 탈락자가 이의를 제기, 문화재위원회가 심의 끝에 인정 유보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내사에 착수했을 정도로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 이후, 살풀이춤은 현재까지도 보유자를 내지 못한 상태다.

2016년도에도 태평무 보유자 선정을 놓고 무용계가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문화재청이 선정한 4명의 보유자 후보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양성옥(63)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보유자로 인정예고 되자 함께 인정조사를 받은 다른 후보 3명이 격렬히 반대한 것이다. 특히 양 교수를 직접 가르쳤던 이현자(81)씨 측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보유자 선정은 무산됐고, 현재까지 공석이다.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 문화재청 훈령을 개정해 보유자 선정을 10년마다 한 차례씩 정기화하기로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보유자가 명예보유자로 전환되거나 사망한 경우에만 새로 보유자를 뽑아 충원했지만 제도개선 차원에서 기준을 완화해 앞으로는 10년마다 한 명씩 뽑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후의 1인자만 보유자로 인정하던 상대평가에서 최고의 기량만 갖추고 있다면 복수의 인원도 선정하는 절대평가로 운영 방식을 변경해 과도한 경쟁과 갈등도 해소할 계획이다.

또한 보유자 인정조사(선정) 방식도 서면ㆍ현장조사 한 차례로 끝냈던 것을 3단계로 확대해 공정성과 합리성을 제고키로 했다. 1단계에서 전승환경과 영상자료, 제작품 등에 대해 사전 평가하는 ‘실적ㆍ전승환경 평가’를 거치고, 2단계 ‘기량평가’와 3단계 ‘심층기량 평가’를 통해 최종 선정한다.

지난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해녀는 취미 또는 직업으로 물질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급증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여든 후속 세대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무형문화재의 바람직한 전승 방식이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해녀는 취미 또는 직업으로 물질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급증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여든 후속 세대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무형문화재의 바람직한 전승 방식이다. 문화재청 제공

재미와 보람으로 젊은 세대 유인해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지 54년 만인 2016년 3월 ‘무형문화재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협약 가입으로 무형문화재 보호 제도 및 정책의 틀을 새롭게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며, 유형문화재에 치우쳐 있던 문화재보호법을 분법(分法)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집권하고 이듬해 바로 시행된 문화재보호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선도적으로 무형문화재를 보호하는 법률이었지만, 무형문화재 범위가 너무 협소하고, 사회환경의 변화로 도제식 전수교육의 효용성이 낮아지는 등 새로운 제도적ㆍ법적 뒷받침이 대두됐다. 법 개정에 따라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만 지정되던 무형문화재가 민족의 삶을 구성해온 무형적 자산들을 보유자 없이 종목만으로도 지정될 수 있게 돼 아리랑, 제다(製茶), 씨름, 해녀, 김치 담그기가 새로 무형문화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신규 무형문화재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현재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승이 이어지고 있는 종목들이다. 특히 해녀는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세대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해녀 체험을 통해 여가를 즐기려는 젊은 여성들이 몰려들면서 제주 해녀학교들의 입학 경쟁률이 10대 1에 육박할 정도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경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무형문화재는 사람이 곧 문화라는 새 정부 문화정책 기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의 고령화로 인한 전승단절 우려, 차세대 전승자인 이수자들의 열악한 활동 환경 등 전승여건을 개선하는 것과 동시에 일반 시민들과 무형문화재 보유자 사이의 간극을 좁혀 모두가 공감하고 향유하면서 전승의 맥을 이어가도록 하는 무형문화재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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