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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티격태격… 두 남자의 어린이집 적응기

입력
2015.03.0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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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던 일상에 다시 풍파가 일기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부터 아들이 어린이집에 나가면서다. 맞벌이 하면서 애 키우자면 어린이집은 불가결한 거점이고, 아들을 그 곳에 연착륙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보고 있는데, 그 일이 처음부터 꼬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겨우 닷새가 지났을 뿐인지라 이렇게 단정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그 닷새는 ‘육아휴직의 최대 위기’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 아빠가 알고 있던 아들 모습이 송두리째 사라진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작년 6월 육아휴직 후 아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주양육자로서, 지난 닷새간의 모습만 놓고 보면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었다. 그 동안 낯을 가리는 일은 거의 없었고, 혼자서 초면의 또래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아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오던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근처 공터에서 뛰놀다가도 어린이집 쪽으로 손을 끌면 저항했고, 더 센 힘으로 잡아 끌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마냥 밖에서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 안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눈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로 서럽게, 큰 소리로 울었다. 모든 아이들과 학부형들이 우리 부자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얼마나 저어대며 우는지 얼굴을 타고 내리던 눈물이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모두 처음 접하는 아들 모습이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싶어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 그쳤고, 이젠 됐다 싶어 다시 안으로 들면 또 울었다. 선생님들의 갖은 장난감(스티커 등) 공세, 간식 공세에 넘어간 건지, 제풀에 꺾인 것인지 울음은 그쳤지만 상황이 그렇게 정리되기까지 이 아빠의 머리는 대단히 아팠다.

산책하면서 진정시킨 뒤 다시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또 “바께 바께(밖에 나가자)”를 외치며 난리치고 있는 아들. 잘 보여야 할(?) 선생님과 학부형들 앞이었지만 울고불고 하는 아들 때문에 표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산책하면서 진정시킨 뒤 다시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또 “바께 바께(밖에 나가자)”를 외치며 난리치고 있는 아들. 잘 보여야 할(?) 선생님과 학부형들 앞이었지만 울고불고 하는 아들 때문에 표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사실 아들이 첫날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적응기라 아빠랑 같이 어린이집에 들어갔는데, 항상 그랬듯 아빠가 가니 아들도 잘 따라 들어왔다. 처음 보는 장난감과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며 또래, 형 누나들과도(만 1, 2세 합반이다) 제법 잘 어울렸다. 첫날 거의 2시간을 놀았다. 하원 때 선생님은 “OO(아들)은 걱정 안 하셔도 되겠는데요!” 라고 평했다. 휴직까지 하며 돌본 보람이 과연 있긴 있구나 싶었다.

문제는 그 다음날부터. 1시간 정도 체류했는데 그 절반은 밖에 나가자며 조르고 우는 시간이었다. 어린이집을 나와서도 문제였다. 서럽게 울면서 진을 좀 뺐다면 더 일찍 낮잠에 들 법도 했는데, 평소보다 2,3시간 늦게 잠들었다. 당연히 저녁 식사도 늦어졌고 밤 9시쯤 잠들던 아들은 11시가 다 돼서야 꿈나라로 들었다. 이 아빠가 아들보다 더 일찍 쓰러져 자기도 했다.

사흘째 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어린이집에 들어가길 완강히 거부하는 아들을 온갖 감언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설득하고 있는 이 아빠 자신을 보고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빠 눈엔 보이지 않는 귀신이 여기 살고 있나, 선생님 6명 중 5명이 바뀌었다는데 어린이집에 문제가 있나, 그냥 복직 전까지 끼고 살까… 등등등. 다행스럽게도 나흘, 닷새 되는 날엔 그 전날보다 우는 시간이 좀 더 줄었다. 그래도 아들을 어린이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서는 씨름을 한판 해야 한다. 아파트단지 내 형 누나들이 다니는 유치원 안에 들어가고 싶어 기웃거리던 아들, 그런 아들을 말리던 이 아빠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어린이집 첫 등원에 얽힌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들을 때만 해도 남의 집 이야기인 줄 알았다. 적응시키는데 열흘은 걸릴 것이라던 말에 코웃음을 치기도 했던 아빠다. 나는 그 절반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휴직까지 한 아빠가 틈나는 대로 아들을 밖으로 돌리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환경에 노출시킨 터라 집에서, 엄마 품에서만 놀던 아이들과는 좀 다르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앞에서 아침에 흔히 목격되는 생이별 드라마는 연출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우리 부자가 그 주인공. 복직까진 아직 시간이 있긴 하지만 마음 놓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봉착하니 주변 형수님, 제수씨, 친구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솔직해져 봐. 애가 원해서 보내는 건지, 엄마 아빠 편하자고 맡기는 건지.’ 곱씹어 보면 결국 엄마 아빠 편하자고 어린이집에 애 보내는 거 아니냐, 그러니 다 감수하든지 그게 힘들면 하나는 일 그만두고 집에서 애 보라는 이야기다.

정말 내가 편하자고 어린이집에 아들을 맡기는 것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본다. 어린이집은 아들이 원해서도 아니고, 이 아빠가 쉬기 위해서 보내는 것도 아니다. 아들도 살고, 이 아빠도 살기 위해 보내는 것이다. 자식농사도 농사지만 그 농사지만, 그 ‘수확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났지 않은가. 일할 수 있을 때 일을 하려면 어린이집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관련시리즈 ▶ 모아보기)

msj@hk.co.kr

어린이집에 나가면서 잠자는 시간도 늦춰졌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자리에 들었을 때지만 좀처럼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달 구경 삼아 밖으로 돌았다. 이 아빠는 아들을 정월 대보름달 앞에 놓고 빌었다. “아들놈이 어린이집을 달님의 100분의 1만이라도 좋아하게 해주세요.”
어린이집에 나가면서 잠자는 시간도 늦춰졌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자리에 들었을 때지만 좀처럼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달 구경 삼아 밖으로 돌았다. 이 아빠는 아들을 정월 대보름달 앞에 놓고 빌었다. “아들놈이 어린이집을 달님의 100분의 1만이라도 좋아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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