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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어벤저스급 연설문팀… 안철수, 손짓 등 원포인트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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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어벤저스급 연설문팀… 안철수, 손짓 등 원포인트 레슨

입력
2017.04.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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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 메시지팀과 원격토론 거쳐 작성

데이터ㆍ팩트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

안, 자유토론으로 메시지 기조 잡고

짧고 강렬한 단어ㆍ청중 호응 유도

#2

홍준표, 종이에 키워드 몇 개만 적어

대본 없이 즉흥연설 ‘원맨쇼’

유승민, 끝장토론 거쳐 본인이 작성

논리적이고 냉철한 스타일 고수

심상정, 경험담 담은 맞춤형 연설 전략

밑줄 긋고 고치기 연속 완벽 소화

말더듬이였던 영국 왕 조지 6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독일의 공습 공포에 시달리던 영국 국민에게 용기를 주고 통합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말더듬이 극복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 ‘킹스 스피치’는 리더의 연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각 당 후보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어떤 비법을 갖고 있으며,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영화에서처럼 떠들썩한 훈련은 없으나 나름대로 메시지를 다듬고 연설 실력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문재인, “지킬 것만 말하겠다”

‘대선 재수생’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메시지팀과 원격 토론을 거쳐 작성한 연설문을 가지고 혼자 연습한다. 그가 더 공을 들이는 것은 연설문 작성이다. 문재인 후보 캠프 ‘더문캠’의 메시지팀은 문 후보의 당 대표 시절 메시지 작성을 담당했던 이들, 그리고 정세균 국회의장ㆍ박원순 서울시장ㆍ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연설문을 썼던 인사들이 추가로 합류한 ‘무지개 메시지팀’이다. 메시지팀 관계자는 “문 후보가 전국 방방곡곡 다니다가도 연설문 초안을 받으면 구체적으로 내용을 추가하도록 요청한다”며 “법안 내용을 비롯해 데이터 하나, 팩트 하나 꼼꼼하게 챙겨 메시지팀이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지난 2일 문화예술인들을 만난 행사인 ‘문재인, 문화예술 비전을 듣다’에서 발표한 연설문도 이런 과정을 거쳐 내용이 바뀌었다. 연설문 초안에는 문화예술인 복지기금 마련 공약이 담겨 있었는데, 문 후보는 기금을 만들기 위해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기존 법이 실행이 안 되는 문제인지 실무진에 확인하도록 했다. 메시지팀은 이미 근거 법이 있음에도 기획재정부가 예산 집행을 미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설문을 수정했다.

이 관계자는 “몇 차례 수정을 거친 뒤 결국 마무리는 후보 손으로 직접 한다”며 “자신이 한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뜻이 강해서 내가 언제 어디서 이런 얘기를 했다, 늘 생각하고 있고 꼭 지키겠다는 연설문 패턴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3일 대선후보 수락 연설문 작성 때는 ‘화해’와 ‘원(ONE) 팀’을 강조하도록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설 연습은 문 후보 혼자서 한다. 지난 대선, 당 대표 경선 등을 거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다는 것인데, 주로 이동하는 차량 안이나 일정 중간중간 짬을 내서 소리 내서 읽으며 연습한다. 신경민 TV토론본부장은 “문 후보가 작위적인 것을 꺼려해 캠프 관계자들이 연설법에 대한 레슨을 받아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으나 거부했다. 문 후보는 연설이나 TV토론에서 진정성이 있으면 통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자산이라 여기고, 스스로 팩트, 데이터, 구체적 사례로 무장이 돼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실제로 그게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확 달라진 연설 배경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최근 목소리 톤이 굵고 강해진데다 손짓도 적극 활용하는 등 연설이 크게 달라져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당내 경선 때 쩌렁쩌렁한 그의 연설에 오래 지켜 본 보좌진과 아내 김미경 교수마저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당 관계자는 “낮은 톤의 목소리가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상대방을 압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안 후보 스스로 이를 이겨내야 한다는 뜻이 강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안 후보의 달라진 연설에 “뒤늦게 득음을 했다” “최고령 변성기” 등 다소 비꼬는 듯한 평가도 있었지만 ‘강철수’라는 별명을 뿌리내리게 할 만큼 이미지 변신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변신 뒤에는 안 후보를 교육시킨 전문가가 있었다. 당 관계자는 “손 처리, 시선 처리 등 연설의 비언어적 요소에 대해 관련 전문가로부터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이 전문가가 안 후보의 소화 능력이 상당히 좋다는 평을 했다”고 전했다. 발성법은 스스로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안 후보는 주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반복 연습을 하고 있다.

연설문도 달라지고 있다. 메시지팀 관계자는 “과거에는 설명형 문장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단어와 문장, 현장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표현을 넣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4일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 담긴 “느껴지십니까”가 이렇게 해서 나왔다.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이끌어 내는 방식을 통해 현장의 호응을 높이고, ‘강한 안철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다.

연설문 작성은 안 후보와 메시지팀이 합작한다. 참모진이 모여 자유토론을 진행해 연설문의 기조를 잡으면 이를 바탕으로 메시지팀이 초안을 만들고 후보가 직접 마무리한다. 그 동안 정책 공부를 많이 해 내용을 소화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홍준표, 즉흥 연설의 강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연설은 말 그대로 원맨쇼다. 당 관계자는 “따로 준비하는 대본이나 원고가 없다. 홍 후보 혼자 다 알아서 한다. 토론이나 연설 때 종이에 키워드 몇 개만 적어서 나선다. 대선후보 수락 연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실무진은 가끔 기초자료를 찾아달라는 주문이 있을 때만 돕는다”고 밝혔다. 홍 후보의 연설에 연설문답지 않은 구어적 표현이 많은 이유다.

홍 후보는 즉흥 연설과 토론에 매우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마이크를 잡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끊임 없이 말한다. 본인의 생각이 분명하고 관련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는 덕분이다. 당 관계자는 “서울에서 정치활동을 할 때나 경남지사로 창원에 있을 때나 매일 아침 신문과 인터넷으로 뉴스를 꼼꼼히 읽으며 현안을 놓치지 않는다. 통계 수치나 팩트도 평소 직접 챙기고 확인한다”고 말했다.

워낙 자신감이 넘치고 거침없이 말하는 스타일이라 현장을 장악해 관심을 집중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나 대중 연설에 부적절한 단어 사용과 청중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무진에서는 이런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홍 후보는 아직까지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유승민, 논리로 무장한 학자형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모든 글을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으로 연설문을 작성해 주었던 그는 요즘 자신의 연설문을 스스로 작성한다. 당 관계자는 “중요한 연설이 있기 전날 밤은 밤을 새다시피 한다. 최종본은 유 후보의 양복 안 주머니에 있기 때문에 언론에 미리 공개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눈에 띄는 것은 글을 쓰기 전 동료 의원, 참모진과 연설 내용을 만들어 가는 토론 과정인데, 당 관계자들은 ‘치열한 끝장 토론’이라고 일컫는다. 참모들이 각자 연설문에 포함돼야 할 내용을 제시하면 유 후보가 반론을 제기하고 이에 대해 재반론을 반복하면서 추린다. 토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 후보가 초안을 만들면 이를 읽은 뒤 또 한 번 열띤 토론을 벌인다. 당 관계자는 “후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거나 무조건 따르라는 스타일이 아니다. 참모들과 논리 경쟁을 벌여서 만약 본인이 설득을 당하면 그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다. 민주적 의견 수렴 과정 그 자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그런 유 후보의 글이 다소 건조하다며 감성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지만 유 후보는 논리적이고 냉철한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유 후보가 연설이나 토론에 약할 것이라는 우려는 당내 후보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벌인 맞짱 토론을 통해 상당 부분 털어냈다는 것이 당 안팎의 평가다. 당 관계자는 “평소 유 후보가 논리 싸움을 즐기기 때문에 연설이나 TV토론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특별한 준비를 하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심상정, 맞춤형 연설로 승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맞춤형 연설 전략을 구사한다. 지난달 26일 ‘2017 당원 승리 전진대회’ 때 심 후보는 ‘60년 친재벌 시대를 마감하고,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시대를 열겠다’는 주제의 연설을 하면서 ‘촛불 시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청년 여러분’을 부르며 각각에 맞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 관계자는 “노동운동을 오래 해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정당정치를 시작한 이후 당의 간판으로 방송 출연과 인터뷰를 도맡다시피 해 왔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비전이 확고하다. 포괄적이고 막연한 얘기보다는 각 유권자층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필요한 해법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 후보는 메시지팀에 연설문 주제를 제시하면서 특히 자신의 경험담을 많이 담는 데에 주력한다. 초안이 만들어지면 사례나 통계 수치 등을 추가해 달라고 정확히 찍어서 요청하고, 수정본을 다시 본인이 몇 번이고 고친다. 메시지팀 관계자는 “남의 얘기가 아닌 자신의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연설문도 본인이 완벽히 소화한 뒤 자신만의 논리 구조로 재구성해서 머릿속에 담을 때까지 밑줄 긋고 고치기를 하도 많이 해 깨끗한 연설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후보 수락 연설 당시에는 “심상정을 찍으면 그 만큼 우리 사회가 개혁이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소수 정당 후보로서 정의당을 찍으면 진보 개혁 세력 입장에서는 사표(버리는 표)가 된다는 인식을 깨기 위한 것이었다.

심 후보는 연설이나 TV토론에 누구보다 자신감을 보인다. 따로 연습을 하거나 준비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은 연설을 짧게 해야 한다’거나 ‘정책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실무자 의견은 적극 받아들인다. 당 관계자는 “현장에서 실무진이 연설을 끝내야 한다고 사인을 주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과감히 끊는다. 연설이나 토론이 끝난 후 모니터링 결과를 전달하면 다음 일정 때부터 바로 수정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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