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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권력과 외설

입력
2015.10.0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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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긍되지 않는 제목에 이끌려 피에르-장 뤼자르의 ‘왜 IS는 성공했는가’(현실문화, 2015)를 읽었다. 최근의 외신에 따르면 올 한 해 동안에만 1만5,000명의 외국인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으며, 이 숫자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합류했던 외국인 수와 맞먹는다. 이런 성황이 IS의 성공을 입증하는 듯하지만,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시리아)의 주민이 국외로 대량 이탈하는 것을 보면 착시라고 해야 한다. 2015년 1월부터 9월까지 지중해를 건넌 시리아 난민은 무려 38만명을 헤아리며, 내년에는 85만이 된다고 한다.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IS의 성공과 실패를 하나로 설명해주는 것이 ‘참수’다. IS는 지난해 6월29일 스스로 국가임을 선포했으나, 정작 그들이 세계적인 관심을 끈 것은 8월19일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의 참수 동영상을 공개하면서였다. 이 동영상은 미국과 싸우는 IS의 선명한 이미지를 전 세계의 무슬림에게 각인시켰다. 그 결과 100여개국에서 젊은 전투원을 불러 모으는 효과를 거두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IS는 아랍의 수니파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기부금을 얻거나, 작고 큰 지하드 조직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IS가 국가건설의 초석으로 삼은 참수야말로 그들의 실패를 보증한다.

지금은 ‘요덕수용소’로 바뀌었지만, 북한 전체주의의 오래된 상징은 원래 ‘아오지 탄광’이다. 어쩌다 남북 스포츠 대결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때, 북한 선수가 실수를 하면 남한 시청자들은 ‘쟤, 이제 아오지 탄광 간다’라며 박장대소하던 때가 어제 같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 아오지 탄광은 북한 전체주의의 상징이면서, 김일성 정권의 허약한 기초를 유지해주는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오지 탄광은 IS의 참수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강제수용소는 즉결심판(참수)과 달리 체제의 우월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설치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얘가 아직 우리 체제의 우수성을 몰라서 그렇지 그걸 알기만 하면, 곧바로 반성하고 공화국의 일꾼이 될 거야’라는 자기 확신 없이 강제수용소는 운영되지 않는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이제 아오지 탄광은 북한 체제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안정된 체제를 전시하는 제도라고 해석할 여지도 생긴다. 아오지 탄광은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과시하는 장소이면서 북한 정치범들의 의식화와 연대가 배양되는 장소이기도 하다(안타깝게도 아직 이 사항은 확인된 바 없으니 추정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강제수용소는 체제와 반체제 사이의 설득과 긴장이 양서하는 ‘빈 공간’이다. 그런데 IS는 이런 빈 공간을 두지 않는다.

IS의 즉결심판과 북한의 강제수용소의 차이는 아우슈비츠로 널리 알려진 히틀러의 절멸수용소와 스탈린의 굴락(노동수용소)에 정확히 대응한다. 절멸수용소는 인종청소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기서는 살아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반면 교화가 목적이었던 굴락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생존ㆍ생환이 가능했다. 절멸수용소를 세운 나치는 고작 12년 만에 패망했고, 굴락을 세운 소련은 그 보다 긴 74년을 버텼다. 콥트교도와 야지디교도를 노예로 삼거나 살해하고, 아랍인의 문화적 유산이 된지 오래인 고대 유적을 파괴하며, 마리아를 비롯해 이슬람 내에서 대대로 용인되어 왔던 성인(聖人) 숭배 전통을 말살하는 등 정치와 사회에 한 치의 빈 공간도 허용하지 않는 IS는 스스로 초석적 폭력 이상의 권력 행사 수단이 없으며 자신의 신앙이나 이념에 확신이 없다는 것을 자복한 것이다.

빈 공간을 없애 평평한 통치 공간만을 조성하려는 권력의 횡포와 무능력은 IS만 아니라, 밀양과 강정 주민에게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대한민국 정부의 시위 엄단 정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빈 공간이 지워져버린 지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벌거벗은 권력의 외설적 실재(the real)이다. IS의 참수 동영상은 포르노 필름 가운데서도 가장 최악이라는 스너프 필름과 하등 다르지 않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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