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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 불편한 '마돈나'… 불편한 푸대접

입력
2015.07.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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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돈나'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마돈나'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상영시간 120분 중 110분 가량은 마음이 불편했다. 스크린 속 여자가 맞닥트린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에게서 자란 여자는 어디서든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이 타고난 갈색머리를 염색한 것이라며 나무라면 검은 잉크로 물들였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요양을 위해 거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남자가 원하면 범법 행위도 기꺼이 저질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차갑고 두껍고 높았다. 배운 게 별로 없고 배경도 변변치 않아서인지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얼굴은 평범하고 몸은 뚱뚱하다보니 이름보다 외모를 비하하는 별명으로 종종 불린다. 가슴이 커서 붙은 별명이 마돈나. 몇몇 남자들은 욕구해소의 수단으로 그의 몸을 악용한다. 냉대와 배신을 겪으며 여자는 조금씩 먹이 피라미드의 제일 아래로 향한다. 사람들은 그의 불행을, 그의 순정을, 그의 무지를, 그의 연민을 먹잇감 삼는다. 혼수상태가 되어서도 여자는 착취대상이 된다. 돈 많은 자가 그의 심장을 노린다.

돈 없고 예쁘지 않고 학력은 낮고 가족도 없는 비정규직 여자가 예고된 추락을 하는 과정을 영화 ‘마돈나’는 잔인하게도 오래도록 지켜본다. 계층문제와 남녀차별 등 약탈적 자본주의가 잠식한 한국사회의 고질들을 작정한 듯 까발린다.

불편하던 심기는 영화 마지막 10분 정도를 두고 급변했다. 여자가 어서 영면해서 고통스럽기만 한 현실을 빨리 떠나기를 바랐는데 어느새 응원의 소리를 마음 속으로 외치게 됐다. 제발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이번만은 헛된 최선이 되지 않기를 나도 모르게 기원했다. 스크린에 전개되는 이야기에 얼어붙었던 마음에 이상한 훈기가 맴돌았다.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면서도 영화는 끝내 희망을 끌어안으려 한다. 영화 ‘마돈나’는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가 거둔 최고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냉혹한 것일까. ‘마돈나’에 대한 시장의 푸대접은 영화 속 주인공 마돈나에 대한 세상의 박대와 다를 게 없다.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 않고 재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극장과 관객의 외면을 받고 있다. 7일 상영 스크린 수는 전국 62개에 불과하고 이날까지 1만2,697명만이 봤다. 예술성 짙은 사회 비판적 영화가 상업성이 떨어지는 것은 예상할 수 있지만 영화의 묵직한 완성도에 비하면 너무 홀대 받고 있다. 지난 5월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세간의 눈과 귀를 끌어들였던 작품 아닌가. 시장만능주의가 지배하는 극장가에서 ‘마돈나’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그저 바랄 뿐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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