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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삼신할매의 반전 매력4

입력
2016.12.1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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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공유와 김고은만 있는 게 아니다.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는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개성 강한 조연들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 인물마다 이야기가 살아 숨쉰다. 극중 할머니 귀신으로 나오는 배우 황석정은 특유의 너스레로 귀신을 보는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을 당황하게 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오 회장의 해결사인 조 상무로 나와 안상구(이병헌)의 팔을 자르는 광기를 보여준 배우 조우진은 새침데기 비서로 반전 웃음을 준다.

‘도깨비’에서 이름이 있는 역할을 맡은 13명의 배우를 살펴보면, 같은 연예 기획사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다.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가 특정 배우 혹은 연예기획사와의 친분 등으로 ‘조연 끼워 넣기’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작가는 캐릭터와 배우의 궁합을 보고 조연까지 일일이 직접 캐스팅했다.

김 작가 탐냈던 조연 중에 유독 빛나는 ‘신스틸러’가 있다. 삼신할매로 나온 배우 이엘(34, 본명 김지현)이다. 그는 지난 2일 첫 회에는 얼굴에 세월이 켜켜이 쌓인 주름 분장을 하고 나오더니, 2회에서는 붉은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섹시한 여성으로 나와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삼신할매의 이력은 화려하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트렌스젠더부터 화류계 마담까지 센 역할을 도맡았다. ‘도깨비’의 시청자를 사로 잡은 삼신 할매 이엘의 반전 매력을 되짚어본다.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에서 삼신 할매 역으로 나오는 배우 이엘. tvN 제공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에서 삼신 할매 역으로 나오는 배우 이엘. tvN 제공

붉은 립스틱 바른 삼신할매

‘삼신할매가 이엘이야!?’ 17일 ‘도깨비’ 방송 직후 한 네티즌(nerdthep****)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극중 이엘의 분량은 짧지만 강렬하다. 의외의 장소에 툭 나타나 던지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이엘은 지난주 방송에서 저승사자(이동욱)와 써니(유인나)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 틔우는 데 중매쟁이 노릇을 했다. 다리 위에서 반지를 팔며 두 사람을 만나게 한 뒤, 같은 반지를 탐내는 두 사람을 향해 “누가 (돈을)내도 상관 없어.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테니”라는 말을 비장하게 던져 극을 순식간에 미스터리물로 몰았다.

삼신할매는 ‘도깨비’에서 지은탁을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저승사자를 막아 지은탁이 생을 이어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삼신할매는 지은탁에 채소를 주며 그의 불길한 미래와 대처법을 넌지시 알려줘 엉뚱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꼭 가족들과 함께 먹어”라며 지은탁에 시금치를 건네고, 지은탁이 시금치로 김밥을 말아 이모 가족들에 먹이면 그를 핍박했던 이모 가족들이 복통을 앓는 식이다. 그래서 이엘은 ‘채소 할매’라고 불리기도 한다. ‘도깨비’ 제작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작가는 지난해 케이블 드라마 ‘아름다운 나의 신부’를 보고 이엘을 캐스팅했다. 극중 건설사 대표인 서진기(김승우)의 심복 손혜정 역을 서늘하면서도 섹시하게 소화해 김 작가가 눈 여겨 봤다는 후문이다. 이엘은 ‘도깨비’에서도 노인 분장과 섹시한 여인 분장을 번갈아 가며 이중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긴장감과 볼거리를 동시에 제공해 ‘삼신할매 괄시하는 ‘도깨비’는 각성하라!’(summeranthe****·SpringSno****)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영화 '내부자들' 속 주 마담을 연기한 배우 이엘. 쇼박스 제공
영화 '내부자들' 속 주 마담을 연기한 배우 이엘. 쇼박스 제공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의 주 마담

이엘이 없었다면, 이병헌의 영화 ‘내부자들’(2015) 속 유행어도 없었다. 이엘이 영화에서 이병헌에 “몰디브가서 모히토나 한 잔 할래?”라고 한 대사를, 이병헌이 나중에 애드리브로 “모히토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래?”로 해 화제가 된 건 유명한 일화다.

이엘은 ‘내부자들’에서 화류계 마담인 주은혜 역을 강렬하게 소화했다. 영화에서 그는 35세 많은 선배 배우 백윤식과 과감한 베드신을 주저 없이 펼쳐 관객들의 눈을 사로 잡는다. 영화 VIP 시사회가 끝난 뒤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조승우가 “너 참 독해”라고 할 정도로 노출 장면을 대범하게 소화했다. 권력자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안상구(이병헌)를 돕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모습에는 여유로움까지 느껴졌다. 이엘은 화려한 이미지로 내연녀 역을 주로 맡았다. 그는 앞서 2010년 개봉한 영화 ‘황해’에서 김태원(조성하)의 내연녀인 주영 역을 맡아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엘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그 장면(노출)만 캡처 돼 안 좋은 동영상으로 많이 돌아다녔다”며 “영화에 필요한 장면이라 연기했는데, 수치심으로 다가오더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야기 흐름 안에서 노출 연기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일부 네티즌이 선정적인 볼거리로 ‘19금’ 장면만 따로 유통하는 하는 현실에 대한 배우로서의 안타까움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트렌스젠더 역을 연기한 배우 이엘. SBS 제공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트렌스젠더 역을 연기한 배우 이엘. SBS 제공

가족에 폭언 듣고 폭행 당한 ‘트렌스젠더’

이엘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에서 병실에 누워 있는 세라 역으로 나온다. 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병원에 입원한 트렌스젠더 역할이었다. 여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진짜 여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 치지만, 그를 반겨 주는 사람은 없다. 극중 세라는 가족에게서 숱한 모욕적인 말을 들어 마음이 멍들고, 온 몸은 멍 투성이가 된 채 병원에 실려와 입을 닫는다. 개성 강한 외모 때문일까. 이엘은 두 번이나 작품에서 트렌스젠더 역을 맡았다. 영화 ‘하이힐’(2013)에서 그는 트렌스젠더인 도도 역으로 나와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을 돕는다. 자주 트렌스젠더 역을 맡은 것에 대해 이엘은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며 “‘하이힐’을 찍고 난 뒤라 ‘괜찮아, 사랑이야’에선 세라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엘은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모습들을 발견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어 놀랐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스토커 역을 연기한 배우 이엘. KBS 제공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스토커 역을 연기한 배우 이엘. KBS 제공

살인마 사랑하는 ‘스토커’

이엘은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2012)에선 스토커로 나온다. 살인마인 김요한(김상경)을 쫒아 다니며 그를 짝사랑하는 오정혜를 연기했고, 무표정한 표정 연기로 극에 긴장감을 줬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산 속에 위치한 한 입시 명문 고등학교에 8명의 학생과 체육 선생님, 정신과 의사가 8일간 고립되면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이 때 이엘은 강단 있는 연기로 일부 시청자들에 처음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2009년 드라마 ‘잘했군, 잘했어’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한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배우로서 표현 영역을 넓혔다. 처음엔 개성 있는 외모로 설움도 많이 당했다. 이엘은 데뷔 초 프로필 사진을 들고 오디션을 보라가면 “에로틱 스릴러나 해”란 말을 듣기도 해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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