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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침원도 펀드매니저도 의사도 “우리 직업이 위협 받아요”

입력
2017.02.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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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원격검침 도입과 함께 실직의 가능성이 커진 전기검침원 박모(48)씨가 22일 오전 서울 시내에서 검침업무를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원격검침 도입과 함께 실직의 가능성이 커진 전기검침원 박모(48)씨가 22일 오전 서울 시내에서 검침업무를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3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위해 기술을 도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대한 기술의 진보 앞에서 또 이익이 우선인 기업 자본주의 속에서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지만, 생계 위협에 몰린 노동자는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인공지능(AI)과 경쟁하고 있거나, 향후 기술 도입으로 타격이 우려되는 업종 종사자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3년차 전기검침원 박모(48)씨

그는 최근 20대 때 따놓은 택시 면허를 꺼내보곤 한다. 가스ㆍ전기ㆍ수도 등의 검침(사용량 측정)은 이미 현재 기술로도 일자리 대체가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고차원적 기술이 아니어도 기기와 기기 사이를 인터넷망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기술만으로 충분하다.

박씨는 “원격검침의 전면화는 전기검침원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일인데다 인력의 대부분인 50대 검침원들은 그만두면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2020년까지 전국 2,200만 가구에 원격검침인프라(AMI)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한전 측은 현재 전국 3,100여명의 전기검침원들의 수가 AMI 도입 후에는 1,700명만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지금보다 진보적인 기술인 AMI의 도입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퇴직자가 발생하는 지역에 점진적으로 AMI를 도입하는 등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검침원에 대한 배려와 재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퇴직 후 염두에 두고 있는 택시운전도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반화하면 역시 위협받는 직종이라는 것도 씁쓸한 현실이다.

10년차 주식 펀드매니저 정모(37)씨

인공지능은 최근 금융권에도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국내 28개 금융회사는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째 시험 운용 중인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를 이용해 4월부터 정식 서비스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로봇과 어드바이저의 합성어인 로보어드바이저는 빅데이터, 머신러닝, 알고리즘 등 정보기술(IT)에 포트폴리오 이론 등 금융기술을 결합한 ‘인공지능 펀드 매니저’로서 투자자의 투자성향 정보를 입력하면 적당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사후관리도 해준다.

국내 한 대형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씨는 “지난해 등장한 카고 메트릭스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카고 메트릭스는 전 세계 12만대의 선박 흐름을 수집해 원자재 가격, 환율, 주식 투자에 활용하며 금융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회사는 위성 이미지를 판독한 데이터나 해운 데이터를 헤지펀드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업무를 해오다 직접 헤지펀드를 차렸다.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의 회장 에릭 슈미트 등이 이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정씨는 “로보어드바이저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투자를 권하는 방식인데 이는 펀드매니저가 하는 업무와 동일하다”며 “로봇이 쓰는 방식은 수학적 모델을 이용하는 퀀트 방식으로 이를 주로 사용하는 펀드매니저는 (로봇이 더 빠르고 정확하므로) 현재 로보어드바이저로 대체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성적 판단(경험, 미래가치 분석 등)을 하는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는 당장 대체되진 않겠지만 종국에는 대체될 것으로 본다”며 “기술이 발전하면 로봇이 과거 데이터뿐만 아니라 통찰력도 가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그때는 펀드매니저가 거의 다 사라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최근 업계에서는 통찰력을 가진 전체 펀드매니저 중 10%만 살아남을 거라는, 혹은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매니저로서 최고투자책임자(CIO) 1명만 필요한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얘기가 나돈다고 전했다.

이언(62) 가천대길병원 정밀의료추진단장

가천대길병원이 도입한 IBM의 인공지능 왓슨. 왓슨은 미국 뉴욕 맨하튼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MSK) 암센터에서 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의학교과서, 1,200만 페이지의 정형ㆍ비정형 의료데이터를 학습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일까지 왓슨이 진단한 암환자는 총 130명(유방암 30ㆍ폐암 30ㆍ대장암 25ㆍ위암 25ㆍ자궁암 10). 왓슨이 추천한 치료법 중 80% 이상이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암환자를 진단할 때 왓슨도 여러 의사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진단한 뒤 치료법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의사들의 긴장감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이언 단장은 “왓슨의 추천 치료법과 의사들이 생각하는 치료법은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라며 “왓슨의 정확한 진단 때문에 인공지능에 뒤지지 않으려고 요즘 공부를 하는 의사들이 눈에 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방사선과 등 이미지ㆍ영상 판독이 필요하거나 고혈압, 당뇨 등 패턴을 가지고 치료하는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나 관련 의사들도 슬슬 걱정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다만, 수술의 영역에서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거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단장은 “기술적으로 완벽하더라도 결국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수술을 맡기기까지는 심리적인 장벽과 책임에 대한 소지가 있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대학원의 교육과정도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이 단장은 “앞으로 예비의사들은 인공지능과 함께 진단하고 수술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인공지능을 완벽하게 활용할 줄 아는 의사가 결국에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학 초기부터 인공지능을 업데이트하고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공학에 대한 학습이 강조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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