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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7 04:40
수정 : 2017.07.01 15:49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교주가 된 2류 SF작가, 할리우드를 유혹하다

등록 : 2017.05.27 04:40
수정 : 2017.07.01 15:49

<12>사이언톨로지의 창시자 론 허버드

#1

오컬트에 몰두하던 통속 소설가

과학기술로 정신 치유강화 주장

학계 인정 못 받자 종교로 변신

유명 연예인들 사로잡으며 성장

#2

옴진리교 테러에 지식인 가세

최근 예방접종 거부 논란 등

인문ㆍ과학 지식의 불균형 탓

전문가도 쉽게 맹신 오류 빠져

톰 크루즈와 전처 케이티 홈즈의 단란했던 한때. 이들이 결혼 5년 만인 2012년 이혼한 이유가 톰 크루즈가 믿는 유사종교 사이언톨로지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할리우드의 유명배우 톰 크루즈는 2012년에 케이티 홈즈와 이혼에 합의했다. 서류에 적힌 이혼 사유는 비공개로 봉인되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이 그들의 딸 수리의 교육 문제라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졌다.

톰 크루즈는 자신이 추종하는 종교교단 사이언톨로지의 학교에 수리를 입학시키려 했으나 케이티 홈즈가 반대한 것이다. 결국 케이티 홈즈는 이혼하면서 딸 수리의 양육권까지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톰 크루즈를 비롯해 존 트라볼타나 줄리엣 루이스 등 많은 배우, 또 칙 코리아나 마크 아이셤 같은 유명 음악인 등 연예계 인물 다수가 신자인 것으로도 유명한 사이언톨로지. 이 종교 교단은 흥미롭게도 2류 SF 작가가 ‘과학’의 이름으로 설립한 것이다.

사이언톨로지 신도인 할리우드 배우 존 트라볼타.

사이언톨로지 신도인 뮤지션 칙 코리아.

사이언톨로지 신도인 배우 줄리엣 루이스.

과학으로 정신능력 개발한다는 종교

론 허버드는 1930년대에 영미문화권에서 이른바 ‘펄프 매거진’으로 불리던 통속 잡지들에 소설을 기고하여 명성을 쌓았다. 그는 왕성한 필력을 바탕으로 SF와 판타지뿐만 아니라 모험, 공포, 역사, 웨스턴, 로맨스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1년에 20편 이상의 작품을 잡지에 실었다. 그러나 SF문학사에 새겨질 정도로 특별히 평가받는 걸작은 없으며, 2000년에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로 각색된 장편SF ’배틀필드‘ 정도가 기억될 뿐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돌아 온 그는 잭 파슨스라는 로켓공학자를 알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파슨스는 당시 로켓연료 분야의 최첨단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알레이스터 크롤리를 추종하는 오컬트 광신자였다. 크롤리는 흑마술, 신비학, 악마숭배 등 이단적인 정신철학의 일가를 이뤄 유사종교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허버드는 파슨스와 함께 오컬트 활동에 몰두하다가 나중에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세워나갔다. 인간의 정신은 과학기술로 치유되고 강화될 수 있으며 그 과정은 특별한 기계 장치와 심리요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여 1950년에 ‘다이아네틱스(Dianetics)’라는 책으로 집필해냈는데 곧장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 전역에 그의 심리치료 세미나 그룹이 500개 이상 생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허버드는 자신의 이론을 의학 및 심리치료 저널에 투고했지만 거절당했고, 주류 과학계는 그를 주관적이고 장황하면서 증거는 빈약한 유사과학 이론가로 비판했다. 사실 그의 심리치료는 피시술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해주고 전생을 비롯한 여러 검증 불가능한 이론들을 적절히 제시하면서 강약을 조절하는 충격 요법에 가까웠으며, 그 과정 자체가 어느 정도 치유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이 종교적으로 체계화된 것이 사이언톨로지이다. 오늘날 사이언톨로지는 막대한 헌금의 요구와 폐쇄적인 비밀주의 등 대개의 사이비종교들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사이언톨로지 창설 교회. 1950년대 론 허버드가 머무르던 거주지였다. 위키미디어

맹신에 빠진 과학자의 위험성

사이언톨로지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허버드는 어떻게 과학을 종교로 만들 수 있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과학자가 누리는 권위의 실체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 서민들은 박사나 교수 등 고학력 전문가에게 상당한 신뢰를 갖는다. 그러나 고도로 세분화된 현대의 학문 체계에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만 벗어나면 의외로 평균적인 교양이나 판단력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리고 드물지만 그런 인물들이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잭 런던의 소설 ‘강철군화’에 나오는 표현대로, ‘시험관에 코를 처박고 있는 좁은 분야의 과학자는 철학을 이해할 수 없는’일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1995년 일본 도쿄에서는 지하철에 독가스가 살포되어 13명이 사망하고 6,3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오는 엄청난 테러가 벌어졌다. 범인은 옴진리교라는 사이비종교 단체였는데, 일본을 자신의 구상대로 개조하려는 망상을 품고 대량살상을 시도했던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독가스를 직접 제조하고 뿌린 신도들이 일본 최고의 이공계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 파장이 컸다. 도쿄대 응용물리학과 출신의 박사과정생, 와세다대 응용물리학과를 수석 졸업한 대학원생, 심장외과 전문의, 인공지능 전문가 등등인 20~40대 지식인들이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게 세뇌당해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이다.

1995년 3월 20일 오전 옴진리교 신도들이 살포한 사린가스를 마시고 괴로워하는 도쿄 시민들. 6,000여 명의 사상자를 낳은 끔찍한 테러에 엘리트 과학자들이 다수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작은 사진은 교주 아사하라 쇼코.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문-과학교육 편식의 결과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대중의 과학문해도(science literacy)도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기 쉽지만 사실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물론 현대 과학이 너무나 방대하고 세분화된 지식체계라는 난점도 있다. 그러나 일찍이 칼 세이건이 한탄했듯이, 기초과학인 천문학에 투자되는 연구비보다 사이비과학인 점성술에 쓰이는 돈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회 투자를 결정하는 정치지도층조차 과학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고 투자도 인색하다.

이렇듯 과학기술은 양날의 칼처럼 균형의 예술이 필요한 분야다. 과학기술 종사자에게는 좀 더 심화된 인문교양 교육이 필요하고, 대중에게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계몽이 시급하다. 단순히 과학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상식의 틀이 체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아기 예방접종 거부 모임이나 진화론에 반하는 창조론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주장들은 대다수의 표본을 무시하고 몇몇 소수의 사례만을 침소봉대하여 강변하는 비과학적 논리의 전형성에 그대로 해당된다. 심지어 과학자들조차 때때로 이런 오류에 빠진다는 점이 현대 문명의 난제이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방법론일 뿐 그 자체로 종교가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론 허버드를 모델로 삼은 영화 '마스터'. 나약한 인간이 유사종교 교주에게 빠져드는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진진영화사 제공

영화 ‘마스터’의 모델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12년 영화 ‘마스터’는 발표와 동시에 평단에서 극찬을 받은, 매우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사회로 복귀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던 주인공은 우연히 어떤 심리치료가를 알게 되어 그의 그룹에 합류한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로서 자신의 가족과 추종자들을 이끌고 지역을 옮겨 다니며 시술을 펼치는데, 때로는 불법 의료행위로 고발당해 경찰에 연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유약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의 심리적 허점을 파고들어 세력을 넓히고는 마침내 종교 교단을 창시하여 마스터로 행세한다. 이 영화 속 마스터의 캐릭터가 바로 허버드를 그대로 따 온 것이다. 마스터 역을 연기한 필립 시모어 호프만의 용모나 작품에 등장하는 특정 장면 등등이 사실상 노골적으로 사이언톨로지와 허버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실 허버드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처럼 삶의 불안정성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종교지도자 같은 강력한 멘토와 형성하는 애증의 밀착 관계를 고찰한 심리드라마이다. 결국 주인공은 마스터 곁을 떠나지만, 마스터 역시 주인공을 그리워한다. 감독은 허버드나 사이언톨로지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아마도 신흥종교의 교주와 광신도라는 설정을 위해 적당한 모델로 차용한 듯하다.

과학과 종교가 어색한 동거를 하는 현대 사회에서 문명의 부담을 힘겨워하는 지친 영혼들의 딜레마. 이 영화는 사이언톨로지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하자고 제안하는 듯하다.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론 허버드

1911년 3월 13일~ 1986년 1월 24일. 미국의 작가, 종교지도자. 10대 시절에 괌의 해군기지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아시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여행했다. 조지워싱턴대에 진학했으나 제적되고 통속소설을 쓰는 작가로 활동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엔 해군 장교로 근무했는데, ‘전쟁 영웅으로서 수많은 훈장을 받았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인간과 우주의 신비한 관계에 눈을 떠서 그 자신과 전우들의 병을 치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정부의 기록에 따르면 자질 부족으로 작은 함정의 지휘관 자리에서 두 번이나 해임됐고 군 병원에는 위궤양으로 장기 입원했다고 한다. 1950년대 초 사이언톨로지 교단을 세워 교주로 군림했다. 70년대 후반에 미 정부 조직에 신자를 침투시키는 등의 일로 수배령이 내리자 장기간 도피 은둔 생활을 하며 SF소설 집필과 작곡 등으로 말년을 보내다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2014년에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선정한 미국의 100대 역사 인물 중 하나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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