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침을 열며] 우리 미래의 적(敵), 상명하복과 호봉제

입력
2016.04.19 14:21
0 0

자원 없는 한국의 눈부신 성장은 우리 민족의 우수한 역량 덕이라 배웠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을 의심케 하는 연구가 최근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인역량조사(PIAAC)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분석한 결과다. 한국인의 역량은 15세 대상 성취도평가(PISA)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나 25세가 되면 OECD 평균이 되고 45세 이후엔 바닥권으로 떨어진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이다. 이런 역량추락 현상은 민간보다 공공부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6~25세의 역량저하는 학습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교육 탓으로 판단된다. 반면 25~44세의 역량하락은 직장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KDI 연구가 찾은 역량하락 이유는 상명하복과 호봉제이다.

우리의 상명하복 문화는 직장 내 역량개발 기회를 막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우리의 상명하복 문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업무상 재량 폭에서 한국은 전 연령에 걸쳐 OECD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당연하지만 25~44세의 재량권이 특히 낮았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젊은이들은 직장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30분 이상 고심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또 직장 내 타인의 생각에 영향 미치는 활동도 드물었다. 문제해결에 고심하지도,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도 않는다는 말은 결국 시키는 일만 한다는 뜻이다. 자기책임 하에 창의적으로 일을 해야 역량이 개발되는 법이다. 우리의 상명하복 문화는 우수한 젊은이들의 역량을 훼손하고 있다.

상명하복 문화를 버려야 한다. 과거의 한국인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라는 정부와 사장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해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투입중심 성장은 가고 생산성중심 시대가 왔다. 그러나 생산성은 명령으로 향상되지 않는다. 자발적인 창의와 혁신을 필요로 한다. 명령수행에 능했던 한국인이 생산성중심 시대를 맞아 창의와 혁신의 벽에 부딪혀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창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길러진다. 이젠 상명하복 대신 자유로운 회의로 의사결정을 해보자. 정부를 예로 들면 중요한 사안은 장차관 주재 실장급 회의에 안건 별로 국과장들이 참석해 결정해 보자. 마찬가지로 국장 주재 과장급 회의에 안건 별로 사무관들이 참석하여 결정해 보자. 또 과장은 과원을 모아 회의를 해보자. 회의는 정례화 되어야 한다. 이 때 자유로운 토론문화는 필수이다. 그러나 공직자 250명을 대상으로 한 KDI 설문결과는 실망스럽다. 상급자 의견에 쉽게 반대할 수 있다는 응답은 17%에 불과했다. 너무 혁신적 주장을 해도 문제없다는 답은 27%에 그쳤다. 미국이 정보통신(IT) 분야의 최강자인 이유는 자유로운 토론 덕이란다.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부서장 생각이 바뀌면 변화가 시작된다.

상명하복 속에서도 자발적인 학습의지라도 있다면 역량이 만회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학습의지는 아쉽게도 OECD 바닥권으로 조사되었다. 왜 그럴까. 재직기간에 따라 임금이 자동 올라가는 호봉제 탓이다. 25세 이전에는 취직을 위해 나름 역량개발을 하나 취직 후에는 임금이 자동 올라가니 더 학습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학습 하지 않으니 역량하락은 당연하다.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버려야 한다. 호봉제는 과거 장기근속 유도 등 긍정적 측면이 많았으나 기술변화가 빠르고 고령화된 사회에는 맞지 않다. 이런 점에서 기획재정부, 인사혁신처가 추진하는 성과연봉제는 개인의 역량개발 동기부여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공공부문의 개인별 성과측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대신 역량과 노력을 측정하면 된다. 상사에 의한 일방적 평가가 우려되면 다면평가를 하면 된다. 같이 일하다 보면 개인의 역량과 노력은 다 드러난다. 상명하복과 호봉제가 젊은이들의 역량개발 기회와 동기를 갉아 먹고 있다. 우리 미래의 적(敵)이 아닐 수 없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