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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선의 욜로 라이프] 아재시크!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바꾸다

입력
2017.02.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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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으로 옷을 제일 못 입는 직업군은?

#답: 기자

#이유: 매일 마감에 쫓긴다, 피곤에 절어 있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

‘아저씨’라면 사실 누구나 뜨끔할 터. ‘촌스럽거나 난해하게 차려 입고도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아저씨의 문화사회학적 정의 중 하나다. 아저씨들은 왜 패션 테러리스트가 됐을까. 멋이 뚝뚝 떨어지는 중년 남성은 왜 외국 영화에만 존재할까.

아저씨들의 슬픈 역사

시크한 중년 남성은 왜 외국 영화나 패션 화보에만 존재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시크한 중년 남성은 왜 외국 영화나 패션 화보에만 존재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사실은 슬픈 이야기다. 아저씨들은 튀는 것도, 개성을 드러내는 것도 죄악인 꽉 막힌 시절을 살았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는 21일 “지금 중년이 된 남성들은 획일성과 동조성을 최고의 사회적 가치로 배웠다”며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고 자랐고, 제대로 옷 입는 법 자체를 익힐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대기업 상무는 딸이 사 준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출근했다가 ‘어디 아프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고 했다.

자동차나 스포츠 용품, 오디오 장비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은 자랑하지만, 옷은 몰래 사는 아저씨들이 많다. 패션에 신경 쓰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부끄러운 것’이라 교육받은 탓이다. 그런 아저씨들을 보며 느끼는 부끄러움은 정작 우리 몫인데도. 아저씨들이 패션으로 드러내려 하는 것은 고작 지위와 권위다.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를 닮은 지루한 정장과 비싸고 화려한 골프ㆍ등산복이 아저씨들의 교복이 된 이유다.

밥벌이에 찌든 아저씨들에겐 멋을 낼 여유도 없었다. ‘먹고사는 것’이 당장 급하다 보니 ‘입고 꾸미는 것’은 뒤로 밀렸다. 개성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경제성이었다. 남성복 구매 담당인 선현우 신세계백화점 과장은 “어떤 품목이든 딱 한 벌을 골라 산 뒤 닳고 해질 때까지 입는 것이 아저씨들의 소비 성향”이라며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고 제일 무난한 것만 찾는다”고 말했다. 아저씨들의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40대 이상 중년 남성을 타깃으로 한 패션 브랜드들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 ‘꽃중년 열풍’이 아저씨들의 소비를 부추길 것이라 기대하고 투자를 확대했던 업체들이 쓴 맛을 보고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옷값 앞에서 작아지는 대한민국 아저씨들. 게티이미지뱅크
옷값 앞에서 작아지는 대한민국 아저씨들. 게티이미지뱅크

중년 남성복 매장에선 ‘100m 앞에서도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특이한 색과 디자인의 옷들이 제일 먼저 팔려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누군가 알아봐 주는 것’이 옷을 고르는 아저씨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티가 잘 나지 않는 바느질 상태나 소재의 질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 큰 결심을 하고 지갑을 여는 아저씨들은 “너 새 옷 샀구나!”라는 말을 들어야 보람을 느낀다. 돈값에 매달리는 아저씨들에게 취향은 사치다.

결국, 패션 테러리스트가 된 건 아저씨들의 잘못이 아닌지도 모른다. 시대와 사회가 그들의 욕망을 억누른 것일 뿐.

‘아재 시크’ 되는 법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씨가 꼽은 아저씨 패션의 특징. ① 양복을 트레이닝복처럼 편하게 입는다. 옷맵시엔 관심 없다. 이른바 ‘양복의 추리닝 화(化)’. ② 아무 옷이나 마구 겹쳐 입는다. 기괴해 보일 정도다. 아저씨들의 독특한 패션 감각에서 영감을 얻으려 파고다 공원을 자주 찾은 유명 패션 디자이너도 있다.

한국일보 40ㆍ50대 남성 기자 12명에게 ‘스스로 패션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1~5점ㆍ5점 만점)’를 물었다. 평균 점수는 2점을 겨우 넘겼다. 이유는 ‘귀찮아서’가 제일 많았다. 역시나였다.

그래서 한국일보 이성철(사진) 편집국장이 나섰다. 게으르거나 감각 없는 이 땅의 아저씨들을 위해, 아저씨들에게 안구 폭격을 당하는 독자들을 위해. LF의 도움을 받아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 봐야 소용이 없어서일 뿐, ‘협찬’은 전혀 없었다는 점을 밝혀 둔다.

50대인 이 국장의 체형은 대한민국 아저씨 평균이다. 전문가의 손길로 단번에 정우성이나 조인성이 되진 않았지만, 중년 남성들에게 ‘조금만 투자하고 신경을 써도 확 달라진다’는 희망을 주기엔 충분했다. 쉬운 팁 다섯 가지.

① 약점 가리기에 집착하지 말자. 적당히 붙는 옷이 더 날씬하고 키가 커 보인다. 한복 같은 펑퍼짐한 바지 대신 슬림핏(Slim Fit)을 고르자.

② 무채색에서 벗어나자. 옷 색만 바꿔도 얼굴이 젊고 화사해 보인다. 상ㆍ하의를 보색(빨강+초록, 노랑+파랑)으로 입으면 다리가 짧아 보인다.

③ 무늬가 선명하고 단순한 상의는 인상을 또렷하게 만든다. 하지만 강한 무늬의 옷 여러 벌 겹쳐 입기는 금물이다.

④ 겹쳐 입기를 겁내지 말자. ‘청남방+청바지’‘청재킷+트렌치 코트’ 등의 조합을 시도하자.

⑤ 소품으로 감각을 살리자. 바지와 비슷한 색감의 양말을 신으면 다리가 길어 보인다. 번쩍거리는 넥타이는 구식이다. 출근 복장에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굳이 피하지 말자.

헤어스타일도 중요하다. 서울 삼청동 H&Y 헤어샵 고영란 원장의 조언. “머리 숱이 없으면 나이가 들어 보일 가능성이 커진다. 정수리와 얼굴 선 주변에 머리를 몰아 주면 전체적으로 숱이 많다는 착시를 일으킨다. 나머지 부분은 경쾌하게 자르자.”

멋지게 차려 입은 노년을 패션 업계에선 ‘시니어 시크(Senior Chic)’라 부른다. 곧 봄이다. 거리에서 ‘아재 시크’를 만날 수 있기를!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패션 센스의 완성은 소품이다. 클러치(가운데)는 얇고 큰 것을 들어야 ‘일수 가방’ 느낌을 피할 수 있다. 마에스트로ㆍ닷드랍스 제품
패션 센스의 완성은 소품이다. 클러치(가운데)는 얇고 큰 것을 들어야 ‘일수 가방’ 느낌을 피할 수 있다. 마에스트로ㆍ닷드랍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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