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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코카서스, 실크로드 그리고 제국

입력
2017.10.30 14: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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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인지한 바가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똑같은 시간일지라도 빠져 있을 때와 마지못해 있을 때 느껴지는 시간은 그 길이가 사뭇 다르다.

과거에 대한 거리감도 마찬가지다. 2세기 초엽 위ㆍ촉ㆍ오 삼국 얘기를 다룬 ‘삼국지’의 세계는 제법 가깝게 느껴지지만, 비슷한 시기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삼국사회는 다소 멀게 느껴진다. 사람이 인지하는 거리, 그러니까 인지 거리는 실제 거리와 무관하게 형성될 수 있기에 그렇다.

시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리적 거리도 그렇다. 실제 거리가 더 먼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는 가깝게 느껴지고, 그보다 가까운 키르기스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중앙아시아는 멀게 느껴진다. 인지 거리는 긍정적으로 언급되고 상상될 때 한층 줄어들곤 하는데, 남미가 축구 등으로 푸근하게 느껴진 데 비해 중앙아시아 일대는 그럴 만한 계기가 적었던 탓이다.

그래서 인지 거리는 실감의 거리며 온기의 거리기도 하다. 그것은 예컨대 실크로드처럼 머리에는 익숙하지만 가슴으론 무덤덤한 이름에 생생함과 따뜻함을 불어넣어 준다. 실크로드가 오랜 옛날부터 동서 간 문화와 물자 교류의 주요 통로였다는 점은 잘 알지만 막상 그 연변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에게는 제법 친근한 이름임에도 그것이 형성됐던 중앙아시아 일대에 대한 인지 거리 축소에는 별 도움이 안 됐던 셈이다. 하여 그들에게서 유대감이나 동질감을 쉬이 느끼지는 못한다.

코카서스도 이와 비슷하다. 백인종의 별칭처럼 쓰였던 ‘코카서스 인종’이란 표현을 통해 나름 친근해진 이름이건만 그 일대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코카서스산맥 일대에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공화국이 있음을 알게 되더라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이 ‘코카서스 3국’이 실크로드와 긴밀하게 연동된 지역이었다는 정보를 추가해도 마찬가지다. 실크로드, 코카서스란 이름에 친숙하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이들 나라가 따뜻하고 생생하게 다가서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육박하고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앞둔 우리가 이들을 이렇게 낯설어 해도 되는 것일까. 지금껏 인지 거리가 가까웠던 나라들에만 계속 집중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걸까. 적어도 옛적 고구려가 취했고 지금 중국이 내딛는 행보와 무척 비교되기에 하는 말이다.

1960년대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 궁전 터에서 벽화가 발굴됐다. 이곳은 옛 사마르칸트 일대로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었다. 7세기경에 그려진 이 벽화엔 새 깃이 꽂힌 모자를 쓴 고구려 사신이 그려져 있었다. 고구려가 중국과 돌궐 너머의 세계와 교류했음을 말해주는 자료다.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미 서북방의 유목 세력과 폭넓게 교섭하고 있었던 고구려는 주변 정치체들로부터 위협이 가중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유목 세계 곳곳을 국가 운영의 상수로 삼아왔다. 온몸으로 초원과 습지, 사막을 넘나들며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국가적 일상의 범위를 넓혔음이다. 고구려에게 실크로드 일대는, 비행기 같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고 있는 우리보다도 인지 거리가 더욱 가까웠던 셈이다.

이는 오늘날 중국에게서도 목도된다. 문화대혁명 같은 극한의 정치 캠페인을 벌이던 시절에도 그들은 아프리카 등지의 이른바 ‘제3세계’를 국가 운영의 상수로 삼아 왔다. 개혁개방으로 국력이 크게 신장되자 중국은 ‘서부 대개발’이란 야심 찬 계획을 수립, 서역 경영을 위한 거점 마련에 발 벋고 나섰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 G2급으로 발돋움하자 국정 목표이자 세계 전략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제시했다. 중국과 육로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하나의 벨트’를, 해로로는 동남아 일대와 인도,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하나의 길’을 놓겠다는 구상이다. 중앙아시아 등에 대한 중국의 인지 거리는 우리와 달리 무척 가까웠음이다.

필자는 지난 21일 한국 아제르바이잔 수교 25주년에 즈음하여 아제르바이잔의 고도 가발라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 다녀왔다. 그곳에선 한국 고고학자들이 2009년부터 발굴을 벌여 혁혁한 성과를 내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보면 근자에 들어 코카서스 3국 여행이 늘어나고 있음이 목도된다. 실크로드 여행이 활성화된 지는 벌써 한 세대를 훌쩍 넘겼다. 민간에선 이렇게 이들 지역에 대한 인지 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국가는 이들을 국가 운영의 상수로 삼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절로 궁금해진다.

세계 10위권 언저리의 경제력, 군사력 등으로 보건대, 한국이 “국가 운영을 일국(一國)을 넘어 여러 국가를 포괄하는 지역이나 세계를 기본단위 삼아 펼쳐내는”, 그러한 ‘제국’의 단계에 들어섰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 세계를 신음케 했던 제국주의적 제국을 말함이 결코 아니다. 세계화가 목표나 이상이 아닌 기본이자 현실이 된 지 꽤 된 만큼, 지금이라도 세계화가 온기를 품은 실감나는 이름이 돼야 하기에 하는 얘기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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