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총 열 편이었다. 그 열 편의 원고를 서로 바꿔가며 읽으면서 우리는 예심위원들이 열 편 편수를 채우느라 고충이 많았으리라 짐작했다. 심사 경험에 비춰봐서 신춘문예 본심 대상이 되기에 부족한, 수준 낮은 작품이 열 편 중에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선작을 정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선 후보가 두 편 정도라는 데, 그리고 그 두 편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데 쉽게 동의했다.
김태림 씨의 ‘누구도 머물지 않는 곳’은 어떤 연구 용역 사업에 고용되어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일했던 화자가 그곳을 공동 주택처럼 사용하며 함께 근무했던 일곱 명의 동료 중 한 남자를 회상하는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 십 년 넘게 석사논문을 쓰고 있는, 서른아홉 살의 철학도라고 이야기된 그 남자의 이력 중에 특이한 뭔가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의 이른바 비정상적인 행위들을 이해하게 해줄 수 있는 그의 성격과 환경에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래서 화자가 결말 부분에서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강아지를 품에 안는 행위를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낸 그에 대한 연민은 당혹스러울 만큼 관념적이다.
‘쓰나미 오는 날’이 취한 소설의 방법은 정통적인 것이다. 모더니즘 미학을 통과한 소설이 대개 그렇듯이, 이 단편은 작중인물의 감각적 지각을 통해 대상 사물들의 특징을 상세하게 전달하는 가운데 그 인물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가지는 근원적 느낌, 즉 그의 신체에 뿌리박고 있는, 관념 이전의 느낌을 환기하는 일에 주력한다. 작품을 가득 채운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세계의 공포와 홀로 마주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의 비참함을 문득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단편은 오늘날 근로 인구의 마음 한 구석을 메우고 있는 불안과 절망의 어둠에 종말론적 숭고의 이미지를 부여했다고 생각된다. 저자 고민실 씨는 소설의 정식(定式)에 구애 받지 말고, 알려지지 않은 것, 은폐된 것, 금지된 것을 말하려는 용기를 가진다면 좋은 작가가 되리라 믿는다. 김인숙 소설가, 황종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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