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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클린턴이 짊어진 폭탄

입력
2016.11.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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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6일 멘체스터 유세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멘체스터=AP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6일 멘체스터 유세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멘체스터=AP연합뉴스

지난해 3월 23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후보경선 출마선언 이후 불붙은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 레이스의 마지막 볼거리는 누가 뭐래도 힐러리 클린턴 후보 최측근 후마 애버딘(40)의 등장이었다. 블록버스터의 반전을 연상케하는 애버딘, 그리고 그에게서 비롯된 연방수사국(FBI)의 이메일 재수사 결정으로 사실상 확정적이라 믿어졌던 클린턴 후보 승리의 가능성이 갑자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분석기관 스테이트 스티릿은 FBI가 애버딘 전 남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의 컴퓨터를 수사하던 중 돌연 튀어나온 클린턴의 업무 이메일로 빚어진 파문을 ‘그 어떤 호러소설보다 긴박한 스토리’라고 평가했다. 비록 6일 FBI가 재수사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유지하는 결론을 내렸지만 애버딘에서 촉발된 ‘재수사 폭탄’은 클린턴의 기세를 꺾기에 충분했다.

1996년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백악관 인턴으로 당시 퍼스트 레이디인 클린턴 후보와 첫 인연을 맺은 애버딘은 이후 20여년 동안 클린턴가(家)의 곁을 지켰던 인물이다. 2010년 위너 의원과의 결혼식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주례를 맡았고, 힐러리는 애버딘의 손을 꼭 잡으며 “나에게 딸은 하나(첼시)뿐이지만 둘째 딸을 삼는다면 누구도 아닌 바로 후마다”고 말한 일화는 둘의 관계가 혈연 못지 않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심지어 클린턴을 마주한 애버딘의 생모는 “누가 진짜 엄마인지 모르겠다. 질투가 날 정도이다”는 농담을 던졌을 정도다. 2008년 클린턴이 처음으로 대권에 도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휴대폰은 항상 애버딘의 핸드백에 들어있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클린턴 부부의 침실을 출입하는 거의 유일한 외부인이라는 소문도 돈다. 이메일 사태가 터지기 직전만해도 언론들은 고액 강연료 논란과 같이 클린턴을 향해 전국민의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마저 놀랍도록 통제해내는 애버딘이 대통령비서실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망이었다.

선거 막판 이처럼 최측근으로 지내온 애버딘이 하필이면 클린턴 후보의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는 사실은 클린턴의 백악관 입성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임기 동안 심각한 불확실성에 시달릴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무엇보다 클린턴을 언제라도 거꾸러트릴 수 있는 폭탄이 애버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선 그의 ‘사람들’에게서 기폭될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거론된다.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 그리고 두 차례의 대선출전은 화려한 경력으로 빛나지만 그만큼 미국을 분열시키거나 때로는 지지층을 낙담시킬 여지가 될 수 있는 주변 인물들을 많이 만들었다는 얘기이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애버딘의 공무상 이메일 유출 연관 사태를 보도하면서 “이메일 논란을 거치며 클린턴 측근들의 진면목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평가하며 “클린턴이 손에 꼽을 수 있는 소수의 인물들에만 의존했던 위험성이 증폭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NYT는 제이크 설리반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존 포데스타 선거대책위원장 등 기밀정보 취급 잘못으로 구설과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들에 클린턴이 유독 집착한다고 꼬집었다. 이미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이들 언론조차 주변 측근에 대한 경계를 가감없이 충고하는 모양새다.

지난 주 라스베이거스 공화당 유세장에 나선 웨인 루트는 두 여주인공이 차를 몰아 벼랑으로 떨어지는 1991년 영화 ‘텔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을 거론하며 “클린턴과 측근들의 최후가 이처럼 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측근 정치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곤궁에 빠트릴 수 있음을 암시한 이 말은 역시 첫 여성 대통령이 같은 이유로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에겐 흘려 듣기가 쉽지는 않다.

양홍주 국제부 차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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