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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헌의 정치학

입력
2018.03.26 14:4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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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개정의 핵심은 권력구조다. 지금까지 아홉 차례의 개헌도 대부분 정부형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헌정사는 4ㆍ19 혁명의 결과인 3차 개헌과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인 9차 개헌을 제외하곤 정당 대표와 주권자의 참여가 배제된 개헌으로 점철되어 있다. 권력구조의 변경이 집권자의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체제의 지속을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치현실과 정치세력 간 힘의 균형이 삼권분립을 통해 어떻게 표출되며, 사회적 힘의 관계가 헌법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헌법의 정치적 의미이다. 헌법이 정치적 결단인 동시에 주권자의 정치적 기획인 이유이다.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의 겸임, 정부의 예산 편성권 등 내각제 요소가 대통령의 권한 강화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 대통령제’에 가까운 제도 모색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분산이라는 명제는 여러 측면에서 조망해 보아야 한다.

우선 청와대가 지나치게 권부(權府)화한 정치적 의미를 간과해선 안 된다. 삼권분립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정부여당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있다. 여당은 국회의 일각을 이루면서 집권세력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를 공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표와 책임성의 원리를 실행에 옮길 당위성을 부여 받는다. 그러나 여당은 사안에 따라 행정부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청와대에 대한 견제 기능은 거의 없다. 공적 시스템 내에서의 수평적 책임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집권당의 청와대 견제는 곧 레임덕으로 인식되고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비치기 일쑤다. 권위주의 정권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정권을 등가로 비교할 수 없지만 박정희 정권 때의 ‘오치성 파동’이 좋은 예이다. 1969년 삼선개헌을 성사시킨 공화당의 4인방을 견제하고자 하는 정략적 성격을 배제할 수 없지만, 집권당의 청와대 견제는 군사권위주의 정권의 속성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정치의 구조적 프레임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때 지적된 문제 중 하나가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였다. 청와대, 즉 대통령과 이에 종속되는 집권당의 얼개는 국회의 대통령과 행정부 견제의 여러 기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결과하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후보를 공천하고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청와대에 사실상 예속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이러한 정치관행이 개선되지 않고는 제왕적 권력의 청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본래 제왕적 대통령은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를 겸하고, 공천권이 정당의 대표나 총재에게 귀속되었을 때 가능하다. 덧붙여 집권당의 의석의 과반을 넘는다면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의 기반이 완성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라는 분점정부가 일반화하고 대통령 공천이 공식적으로는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 담론이 끊이지 않는 것은 집권당의 견제 기능 부재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의 명시ㆍ묵시적 공천 관여 를 배제할 제도화가 절실하다.

둘째, 정부형태 변화를 위한 문제 제기는 여소야대의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정부가 분점정부 상황의 강력한 견제에 직면할 때 제왕적 대통령 프레임은 의미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한 개헌 이슈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대통령 권력을 둘러 싼 논의가 한국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수반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제왕적 권력의 분산은 하위 수준의 선거제도나 정치제도에 대한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이루어지기 어렵다. 내각제라 해서 제왕적 권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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