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한남동 이슬람교 서울 중앙서원(위)과 인천 차이나타운의 패루가 마치 사막 위에 세워진 성처럼 쓸쓸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견고하게 쌓은 경계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핀 홀 카메라를 이용한 장 노출 촬영을 통해 피사체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하나의 순간으로 담아냈다. 핀 홀 카메라는 렌즈 대신 바늘구멍으로 빛을 통과시켜 필름에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이다.
60x120mm 파노라마 핀 홀 카메라, f=135, 셔터속도 10~20초, ISO 100
낯선문자. 다른 얼굴. 이질적 풍경... 한국과 타국, 두 문화가 나뉜곳
여긴 어디인가. 어느 이슬람 국가의 한 복판인 듯, 중국의 이름 모를 거리에 선 듯, 바늘구멍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꿈결처럼 아련하다. 희미하게 맺힌 이질적인 윤곽은 이 곳이 우리와 다른 그들만의 세상임을 주장한다. 한국과 타국, 우리와 그들 사이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버젓이‘다름’을 공표하는 이 경계를 두고 우리는 그 안쪽의 삶을 궁금해 하기도,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이유 없는 동정심을 발휘하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도 경계를 대하는 흔한 방식이다.
11일 서울 중구 광희동의 몽골타운. 음식점과 헤어샵, 휴대폰 매장, 식료품점, 화물운송업체 등이 들어선 말 그대로 평범한 몽골인 마을이다. 10층짜리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뜻 모를 키릴문자 안내판이 앞을 가로막는다.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은 경계를 침범한 이방인을 향해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을 보냈다.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우리 시선과 닮았다.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과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되돌려 받은 느낌이다. 신발을 신은 채 사원의 카펫을 밟고 선 이방인을 향한 무슬림의 경멸 어린 시선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중국동포가 모여 사는 가리봉동의 시장골목이나 프랑스인 마을, 일본인 마을에서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우리와 그들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코미디지만 “사장님 나빠요”라는 외침이 이유 있었던 것은 10여 년 전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대표적인 감정이 동정심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허드렛 일자리’라도 그들과 나누기 아쉽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나 박춘봉 토막살인 사건, 심심하면 터지는 보이스피싱 사기와 같은 범죄 역시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왔고 경계는 갈수록 높고 단단해 졌다.
한 때 ‘국제화’는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린 중요한 화두이자 지상 과제였다. 그렇게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동안 더 크고 다양한 세계가 우리 안으로 이주해왔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 수는 17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3% 이상이 외국인인 다민족, 초국적 사회가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경계심 거둬야 같은 땅에서 공존할 수 있어
수없이 많은 민족과 언어, 문화와 삶이 이 땅에서 공존하고 있다. 공존은 곧 끊임없는 충돌을 의미한다.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충돌을 우리는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할 용기와 철학이 없다면 작은 경계가 만들어낸 ‘한국 속 또 다른 섬’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사진부 기획팀=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김주빈 인턴기자(서강대 중국문화과 4)
이정현 인턴기자(국민대 사법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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