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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공지능의 섬뜩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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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공지능의 섬뜩한 선택

입력
2016.03.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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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모님과 배우자, 그리고 자식이 다 같이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건가요?” 살면서 한 두 번쯤은 들어봤을 질문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의 성인 버전쯤 될 것이다.

사람들의 답이 같을 리 없다. 누군가는 더 오래 살아야 하는 자식이라고, 어떤 이는 평생 동반자인 배우자라고, 또 다른 이는 그래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버릴 순 없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상황이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람의 이성과 감성은 늘 같이 움직일 수 없으며, 또 그렇게 천편일률적이지도 않다. 맞닥뜨리는 환경 자체가 머릿속 상상과는 괴리가 있을 공산도 크다. 마음은 어느 한 명을 향하고 있다 해도 바로 옆에서 허우적대는 이의 손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고, 그 절박한 상황에서 매우 본능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다. 전차는 시속 100㎞로 질주하고 있다.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철로 위에서 작업 중이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대로 간다면 인부들은 모두 죽는다. 오른 쪽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다.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는 대신 한 명의 인부가 죽게 된다. 전차가 다니는 철로 위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일을 하고 있는 건 다섯 명의 인부이고, 비상철로 위의 인부 한 명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떠오른 건 얼마 전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시범운행 중 낸 사고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자율주행차는 탑승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고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작동하지 않아도 도로 상황을 파악해 자동으로 주행한다. 사고는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 모래주머니를 피해 크게 우회전을 하려다 직진하던 버스와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구글이 자율주행차 과실을 인정한 첫 사고였다. 구글은 사고 직후 “버스는 다른 유형의 차보다 양보할 확률이 낮다는 것을 이해했고, 이 정보를 소프트웨어에 입력했다”고 밝혔다.

운전기사를 둔 ‘사장님’이 아니어도 졸음과 씨름하며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되는 날이 머지 않았다는 점은 참 반갑지만, 자율주행차 역시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많은 도덕적, 윤리적 선택의 질문을 던진다. 샌델의 사례를 인용하자면,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다섯 명과 인도 위에 서 있는 한 명의 보행자 중 누구를 살려야 하는가. 너무 극단적인가. 그렇다면 위기의 순간에 본인과 동행자를 우선시 해야 하는가, 아니면 보행자를 우선시해야 하는가.

전방위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인공지능의 공습을 많은 사람들이 두렵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위협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적은 비용으로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면, 더구나 경쟁으로 따라잡을 수 있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거라면 내가 그 일자리를 지켜야 할 명분은 전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9일부터 시작되는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눌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지만, 설령 이번에 이 9단이 이긴다 하더라도 따라 잡히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는 수많은 도덕적, 윤리적 질문에 사전 답안지를 제출해 놓고 살아야 한다는 점일지 모른다. 가족들 중에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할지, 나와 동승자 중 우선 배려해야 할 사람은 누군지, 또 소수는 다수를 위해 늘 희생하는 것이 옳은지 등등. 구글이 그랬던 것처럼 입력정보를 수시로 바꿀 순 있겠지만, 그 또한 사전에 결정된 선택일 뿐이다. 상황이 닥치면 옳든 그르든 그 선택을 거부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다. 마치 그게 운명인 것처럼. 정말 섬뜩한 일이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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