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강경파서 실용노선 전환
박 대통령과 만남에 공들여
면담장에 靑 사진사까지 통제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에서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보다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의 만남이었다. 이란에서 그가 최고 존엄으로 여겨지는 만큼, 박 대통령을 동행 취재한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청와대의 대통령 전속 촬영 담당자들도 면담장 접근이 일절 차단되는 등 삼엄한 경호 속에 만남이 진행됐다.
신정(神政)과 선거에 의한 공화제가 독특하게 결합된 이란에서는 대통령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다. 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이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만,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최고지도자가 헌법수호위원회 등을 통해 이슬람적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최고지도자는 또 군부 주요 요직과 사법부 수장의 인사권을 통해 군과 사법부도 통제하고 있어 실질적인 권력 1인자다. 하메네이는 1979년 이란 혁명을 이끈 초대 최고지도자인 호메이니가 1989년 사망한 뒤 27년째 최고지도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메네이는 혁명 지도자답게 대표적인 반미주의자에 보수 강경파였다. 미국에 맞서고자 핵 개발도 추진했다. 그러나 서방의 경제 제재로 어려움에 처하자 미국과의 핵 협상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유연한 실용 노선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지난해 말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면담했고, 올해 초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만나는 등 외교적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이번에 박 대통령을 만난 것 역시 국제사회에 복귀하려는 행보의 일환이다. 이란은 이례적으로 하메네이와 박 대통령의 면담 일정을 일찌감치 확정해주는 등 이번 만남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전통적 우방을 자처해왔던 북한 입장에선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73년 북한과 수교 이후 하메네이는 1989년 평양을 직접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2013년 이란을 방문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 당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 대해 “전 세대 수령들의 위업을 계승한 분”이라고 치켜 올리는 등 양국은 돈독한 우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북한 입장에선 자신들과 핵, 미사일 기술 커넥션을 유지해온 보수 강경파 세력을 대변하는 하메네이가 박 대통령과 별도의 면담에 나서며 예우를 갖췄다는 것 자체가 배신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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