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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상 최대 이익이 불편한 이유

입력
2017.11.20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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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수치’만 본다면 요즘 한국 경제는 콧노래가 절로 나와야만 한다.

우선 우리나라 경제의 젖줄인 수출이 너무 좋다. 미국 등 전 세계 경기 호전에 힘 입어 올 들어 수출액은 이미 5,000억달러도 돌파했다. 연간 수출액 누계로는 최단 기간 달성이다.

경제를 비추는 거울로 불리는 증시도 사상 최고치다. 올해 2,000포인트에서 출발한 코스피는 어느 새 2,500도 넘어섰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깜짝 실적이 주가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한국거래소 상장사 525곳(금융업 제외)의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20조도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증가한, 사상 최대 기록이다.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은행들의 누적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2배인 11조원을 넘었다.

세수도 초 호황이다. 1~9월 국세 수입(207조원)을 감안하면 올해 세수는 260조원 이상 될 전망이다. 당초 예상보다 20조원이나 많은 규모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숫자 잔치에도 현장의 체감 경기는 나아진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삭풍이 더 심해진 곳만 눈에 띈다. 왜 그럴까.

먼저 수출의 경우 반도체 쏠림이 심하다. 10월 전체 수출액 450억 달러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95억달러나 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억달러(70%)나 늘어난 것으로, 10월 전체 수출 증가분(30억 달러)보다도 많은 것이다. 결국 반도체를 빼면 10월 수출액은 오히려 줄었다는 이야기다.

증시와 기업 실적도 마찬가지다. 올해 코스피가 상승한 것은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반도체 호황에 급등한 덕이 크다. 두 기업의 주가는 1년 새 사실상 2배가 됐다. 더구나 3분기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 상승 폭 13조원 가운데 두 기업이 기여한 몫은 12조원이나 된다는 사실을 눈 여겨 봐야 한다. 두 곳을 빼면 코스피도, 상장사 전체 이익도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다.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게 된 것도 그 만큼 많은 직원을 쫓아내 인건비를 줄인 게 주요 배경으로 분석된다. 주요 은행 7곳의 직원 수는 지난 6월 말 기준 8만2,500여명으로, 1년 전에 비해 4,000명 이상 감소했다.

결국 반도체 착시와 감원이 만든 ‘당신들의 사상 최대 실적‘이다 보니 국민들은 전혀 체감할 수 없는, 오히려 정반대의 한파만 느끼는 상황인 셈이다. 실제로 10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8.6%를 기록했다. 10월 기준으로 보면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청년층 취업자 수도 전년 동월 대비 5만2,000명 감소했다. 물가 인상을 반영한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전년 대비 0.4% 줄었다. 올 2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 감소했다. 2015년 4분기 이후 7개 분기 연속 감소다. 국민들의 삶은 갈수록 더 팍팍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의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인 3%대 달성이 확실시 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지금은 화려한 ‘숫자 경제’와 풍족한 세수에 취해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수치나 양적인 성장, 목표 달성에 연연하기 보다 실질적인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게 경제팀 책무다. 사상 최대 이익 뒤에 오히려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지 않는 지 살피는 것도 과제다. 무엇보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며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었는데도 청년 실업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제2,3의 반도체 신화를 이어갈 신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지금은 축포를 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반성하고 신발끈을 다시 조일 때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고작 20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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