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교황들과 달리 교리보다 사랑의 실천과 연대 우선
신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부와 권력 뜻하지 않음을 보여 줘"
“세월호 참사는 돈에 대한 집착이 빚은 참극”
세계적인 종교학자인 브라질 상파울루감리신학대 인문법대 학장 성정모(57ㆍ사진)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인간과 사회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일보와 6~8일 주고받은 이메일 인터뷰에서다. 교황의 방한이 천주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변화를 부르는 계기가 되리란 얘기다. 교황은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현실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행보를 몸소 보여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성 교수는 교황을 배출한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한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다.
성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돈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참극으로 돈에 대한 강박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기본 가치와 권리를 잊게 될 것”이라며 “교황의 방한이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근본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성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돈을 ‘우상’이라고 못박으며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것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부자들의 부가 늘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교황은 신자유주의 사상과 싸워왔고 정부가 시민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말해왔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장하는 ‘행동하는 가톨릭’도 성 교수가 주목하는 점이다. 성 교수는 한국 천주교회를 향해 “구원은 부와 권력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이뤄진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교회가 더 열심히 전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황이 종교를 넘어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이유를 ‘인간미’에서 찾았다. 성 교수는 “그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성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_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이다. 대륙 청년대회에 교황이 직접 참석해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처음인데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청년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선 관심사 중 하나다. 교황은 청년들로 인해 교회가 더 많은 사회 참여 활동을 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교황은 또 아시아 대륙의 중요도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교회 성장에 한국 천주교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_이번 방한 일정 중 이전의 다른 나라 순방과 다른 점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교황 방한 일정 중 가장 중요한 행사는 한국의 순교자 124위에 대한 시복식(16일 서울광화문 광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천주교사는 순교의 역사다. 천주교인들의 순교는 엄청난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또 주목해야 할 일정은 교황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주제로 미사(18일 서울 명동성당)를 집전한다는 점이다. 개인 생각으로 한반도의 화합은 통일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통일은 여간 어려운 주제가 아니지만 화합의 정신과 용기를 가지고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 가치인 용서와 화합의 정신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_프란치스코 교황이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 등 이전 교황과 다른 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베네딕토 16세와 요한 바오로 2세 등 전임 교황들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올바른 교리를 중심으로 교회가 강하게 단합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사명은 이웃,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리보다는 사랑의 실천과 연대가 우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바른 가르침’보다 ‘올바른 실천’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_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이나 행동 중 인상 깊었던 것을 꼽는다면.
“교황의 수많은 행동이나 연설이 내게 감명을 줬다. 그 중 두 가지만 꼽는다면, 첫째로 그의 소박함과 겸손함이다. 교황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예수가 인간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그들을 섬기러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교회는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모방하려 들지 말고, 가난하고 소박한 이들과 어울려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하려 했던 예수의 뜻을 따라야 한다.”
_교황의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전 권고문과 달리 새롭다. 사람들은 종종 오늘날 교회의 최대 과제를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권고문에서 교황은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는 돈이 인생과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됐고, 자본 증식의 이면에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엄존한다. 인간의 가치가 부의 소유에 의해 평가되는 세상에서 빈자들은 ‘2등 시민’으로 취급된다. 사람들은 소박한 삶을 실천하는 교황을 통해 신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부와 권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연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또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시대에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인간적 가치도 깨닫게 될 것이다.”
_교황의 방한이 한국 사회와 천주교에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자본주의 문화와 황금만능주의로 점철된 세상에서 교황의 방문은 인간과 사회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돈에 대한 집착과 강박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기본 가치와 권리를 잊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는 돈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참극이다. 정부는 무조건적인 자본의 논리로부터 시민,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부자들의 부가 늘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자유주의 사상과 싸워왔고, 정부는 시민들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말해왔다. 교황의 방한이 한국인들에게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가톨릭뿐 아니라 다른 기독교 교회, 정부 그리고 경제주체들이 공익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한국사회의 근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활발한 공론을 펼치게 되길 바란다.”
_한국의 시민과 한국 천주교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늘날 세계는 권위적이지 않은, 인간미 넘치는 리더를 원한다. 물론 교황 역시 한 명의 인간이기에 완전하지 않은 존재지만, 그의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의 가르침을 들어보면 경제는 인류와 사회전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돈이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사회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교회는 ‘구원은 부와 권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이뤄진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열심히 전파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황의 방한이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 심지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란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성정모 교수 프로필
성정모 브라질 상파울루감리신학대 인문법대 교수는 가톨릭 평신도 해방신학자다. 열살 때 브라질로 건너 간 이민 1.5세대이기도 하다. 상파울루대 경영학과 3학년 때 중퇴하고 사제가 되려 신학대에 다시 입학했으나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평신도로서 신학 공부를 계속했다. 그의 제자인 김항섭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은 “1970~80년대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레오나르도 보프 등 해방신학 1세대를 잇는 가장 유력한 2세대 학자로 평가 받는다”라고 소개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성 교수의 저서로는 ‘하느님 체험, 환상인가 현실인가?’(가톨릭출판사ㆍ1994), ‘인정 없는 경제와 하느님’(가톨릭출판사ㆍ1995), ‘욕구와 시장, 그리고 신학’(일원서각ㆍ2000)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