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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한국안보와 오키나와

입력
2017.06.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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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키나와(冲繩)에 있는 가데나(嘉手納) 기지와 후텐마(普天間) 기지를 견학했다. 가데나는 미국 태평양 공군의 가장 큰 비행장으로서 제5공군 소속 제18비행단이 주둔하고 있다. 후텐마는 미국 해병대의 중추인 제3해병 원정군이 주둔하고 있는 항공기지다. 가데나가 후텐마보다 시설이나 인원 등의 규모에서 3배 정도 크다. 두 기지 모두 미군이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에 오키나와를 점령한 후 설립한 군사시설이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발진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동북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전체를 미군의 작전범위로 포괄하는 중추 전력(戰力)이다.

가데나 기지에 대해서는 지하 상황실에서 미군 준장이, 후텐마 기지에 대해서는 지상 회의실에서 미군 대령이 연혁과 임무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영내를 안내하며 설비와 병기 등을 보여주었다. 두 기지 모두 일본은 물론 한국의 방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미군 병영이다. 한반도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면 두 기지에서 발진한 전투기는 한 시간, 오스프리(수직 이착륙 헬기)는 네 시간, 코브라 헬기는 24시간 안에 서울 일원에 도착한다. 두 기지는 미국에서 한국에 투입되거나, 한국에서 미국으로 철수하는 인원과 물자의 중간 기착지 역할도 수행한다. 아버지가 북한 출신이라고 밝힌 미군 대령은 2만여 명의 미 해병대가 한국방위를 위해 항상 대기 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百聞不如一見). 서울에서 1,500여㎞나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한국의 안보를 지탱하는 강력한 후방기지이다. 아니 일본열도에 산재한 미군기지 모두가 그렇다. 작년에 히로시마(廣島) 근처에 있는 이와쿠니(岩國) 미군기지(일본 자위대와 겸용)를 견학했을 때도 한국의 안보가 주일 미군은 물론 자위대와도 직접 간접으로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엄연한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이번에 오키나와에서 한미일의 안보가 종횡으로 얽혀 있는 현장을 다시 목도하면서, 현재 한국에서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벌이는 공허한 논쟁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한심한 작태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는 6ㆍ25전쟁 때 미군이 일본을 후방기지 또는 휴양장소로서 아주 잘 활용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자위대가 6ㆍ25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일본은 연인원 1,450명의 특별소해부대를 원산 앞바다에 파견하여 기뢰 제거작업을 벌였다. 작업 중에 한 명이 전사했다. 8,000여 명의 일본인 노무자도가 참전하여 4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 선박도 다수 징발되었다. 일본이 6ㆍ25전쟁에 직접 가담한 규모를 16개 참전국과 비교하면,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터키에 이어 6위에 해당한다. 여기에 미군 군속이나 북한ㆍ중국 체류자로서 참전한 일본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존재하는 현실적 상황, 그리고 6ㆍ25전쟁에 참입한 역사적 경위가 위와 같을진대,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면 한미일이 어떤 형태로든지 한 팀이 되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그 때는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가 한미일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다시 전면에 부상할 것이다. 특히 오키나와의 중요성은 더욱 더 높아질 것이다. 북한이 요즈음 핵탄두와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여차하면 주일 미군기지를 타격하겠다고 호언하는 것은 이 점을 간파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에서 벗어나 한국의 안보를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고 한미일의 연계 속에서 파악하는 안목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이나 주민처럼 한국의 안보를 위해 희생을 감내(堪耐)하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업에 쫓기는 일반인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한국의 앞날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만이라도 그런 식견과 자세를 갖추면 좋겠다.

실제로 오키나와는 일본국토의 0.7%에 불과하지만 주일 미군기지의 70%를 껴안고 있다. 미군의 비행기 추락이나 성폭력 사건 등도 가끔 발생한다. 그리하여 오키나와 주민은 미군기지의 철거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미일 정부는 그들의 격렬한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후텐마 기지를 2020년까지 헤노코(邊野古) 해변으로 이전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미군기지의 엉뚱한 폐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이 문제에 끼어들 수는 없지만, 하루 2,000명이나 되는 오키나와 여행객만이라도 한국의 안보를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오키나와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호유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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