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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에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

입력
2017.04.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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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왼쪽) 감독과 배우 김민희는 지난달 13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불륜 관계를 인정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홍상수(왼쪽) 감독과 배우 김민희는 지난달 13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불륜 관계를 인정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3일 프랑스 칸에서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올해로 70회를 맞은 칸국제영화제가 한국 감독들의 영화를 대거 초청한다고 내용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로 생애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정병길 감독의 ‘악녀’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상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비경쟁 단편영화부문에도 배기원 감독의 ‘인터뷰: 사죄의 날’과 김미경 감독의 ‘김감독’이 칸의 초청을 받아 한국 영화계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 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두 편이나 칸에 가게 됐습니다. ‘그 후’는 경쟁부문에, ‘클레어의 카메라’가 특별상영 부문에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칸영화제가 그의 연출력을 인정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경쟁부문에 봉 감독과 홍 감독이 나란히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 영화감독이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한국영화계는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한 차례도 수상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홍 감독과 한국영화계의 경사라 할 일에 선뜻 박수를 보낼 수 없는 건 왜일까요. 배우 김민희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일 겁니다. 두 사람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륜’을 인정하는 등 당당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아마 홍 감독의 성취에 공감을 표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홍 감독은 김민희와 “가까운 사이(close relationship)”라고 말했습니다. 김민희는 생중계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홍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고는 “이 기쁨은 당연히 홍 감독님 덕분이다.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해 영화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불거진 불륜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용기를 얻은 것일까요. 이들은 지난달 아예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사랑하는 사이”라며 공식 발표까지 했습니다. 홍 감독은 자신들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 “일반 국민이기 보다는 어떤 분들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나와 김민희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니까”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그의 말대로 영화계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분돼 있습니다. 그들의 당당한 기자간담회를 두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는 반응과 함께 “예술과 사생활은 별개”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홍 감독에게 예술 활동과 사생활이 별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알다시피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화감독과 불륜을 저지른 여배우 영희가 등장합니다. 물론 김민희가 영희입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주변인들 혹은 다수를 향해 “모두 다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것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낯이 뜨거워집니다. 홍 감독은 영화에 자신의 이야기를 100% 반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 반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작품에서도 영화와 사생활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생활로 인해 예술이 변질돼 보이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적절치 못한 관계를 방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칸영화제가 초대장을 보낸 ‘그 후’와 ‘클레어의 카메라’에는 모두 김민희가 출연합니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예술과 사생활이 맞물려 있는 내용이라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오버랩 됩니다.

시간을 지난해 5월 칸영화제로 돌려보겠습니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영화제가 한창이던 때 촬영됐습니다. 김민희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경쟁부문에 올라 칸영화제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김민희는 ‘아가씨’ 제작진과는 별도로 움직였습니다. 바로 홍 감독과 함께 출국했으니까요. 칸에서 두 사람은 ‘클레어의 카메라’를 촬영했습니다. 김민희는 ‘아가씨’의 시사회나 기자회견 등 모든 일정에 참석하면서 틈틈이 홍 감독과 작업을 이어간 것입니다. 배우 정진영과 장미희도 이 시기 칸으로 건너와 ‘클레어의 카메라’에 출연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양심 고백’을 하겠습니다. 사실 두 사람의 불륜설이 널리 알려진 건 칸영화제 이후였지만, 칸에서 취재하던 국내 기자들은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한 ‘아가씨’가 생각지도 못한 스캔들에 휘말리는 일이 벌어지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현지발로 보도된 기사 중 불륜의 ‘불’자도 볼 수 없었던 건 그 이유입니다. 국내 언론은 김민희에게조차 홍 감독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묻지 못했고, 아니 피했습니다. 김민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로 작업을 했던 ‘클레어의 카메라’가 결국 칸영화제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주인공이지만 아마도 관객들은 김민희를 찾는데 바쁠 듯합니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그 후’는 김민희가 주인공입니다. 권해효 김새벽 등이 출연했다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관객들이 내용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요.

만약 홍 감독이 경쟁부문에 진출한 ‘그 후’로 황금종려상을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국영화계는 잔치라도 열어야 할 수상결과가 나오고도 진심 어린 박수를 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지 않을까요. 칸영화제가 홍 감독의 영화를 두 편이나 초대했어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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