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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포괄보조금제로 지자체가 알아서 쓰게

입력
2017.02.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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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릴 때는 필요한 용도마다 돈을 주다가, 어느 정도 크면 일정액을 주고 통상적인 것은 아이에게 맡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 중앙정부는 스물이 넘은 지방자치 정부를 아직 아이 다루듯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주는 돈은 크게 지자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과 중앙이 쓸 곳을 정해 주는 돈인 국고보조금이 있다. 그런데 갈수록 이 국고보조금이 늘어나 지자체 예산 중 자유롭게 쓰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이를 측정하는 재정 자립도는 2012년 77.2%에서 2016년에는 74.2%로 하락했다. 더구나 정부는 필요한 사업비의 대략 3분의 2만 주고 나머지 3분의 1은 지자체가 내도록 한다. 결국 지자체는 공무원 인건비 지출하고 중앙이 시키는 보조금 사업의 3분의 1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게 된다. 지방은 중앙이 시키는대로 돈을 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국고보조금은 약 2,000개 사업별로 칸막이가 쳐 있다. 배정된 보조금이 남아도 이를 다른 사업에 쓸 수 없고 중앙에 돌려주어야 한다. 이 칸막이는 부처간은 물론, 심지어 한 과 안에서도 사업이 다르면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보조금으로 받은 10억원 중 6억이면 충분한 경우, 남은 돈을 돌려 주기 싫어 억지로 낭비하며 10억을 다 쓰는 게 현실이다. 반면 모자라는 분야는 돈이 없어 쩔쩔맨다. 226개 지자체마다 주민이 원하는 바가 다를 것인데 어찌 중앙정부에서 지자체 별로 예산을 정해 주는가.

그렇다고 국고보조금을 없애고 모두 용처 없이 그냥 주는 방안은 지나치다. 지자체 자율에 맡길 경우 지자체가 해야 할 일임에도 이를 제대로 할 유인이 적은 사업도 있기 때문이다. 국고보조금 제도 자체는 필요하다. 단, 지자체 대상 국고보조금 사업은 지자체가 사업을 할 유인이 없는 경우로 대폭 제한해야 한다.

아울러 지자체에 보조금 총액을 주고 그 안에서 지자체가 자율 사용토록 하는 제도, 즉 포괄보조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공무원들의 돈 나누어 주는 권한을 약화시킨다. 일부는 별 할 일이 없어지게 될 수도 있다. 현재도 지역발전특별회계에서 주는 돈에는 지자체의 자율성이 허용되어 있으나 매우 형식적이며 여전히 각 부처별 심의를 거치고 있다. 호주도 국고보조금 항목을 대폭 축소하는 개혁을 2008년에 성사시켜 큰 성공을 경험한 바 있다.

문제해결의 3단계 해법을 제시한다. 1단계로 A부처 특정 사업예산의 최소 50%는 각 지자체가 기본으로 쓰도록 하고 절감한 예산은 해당 부처 내 다른 보조금 사업에 전용토록 허용하자. 공무원 권한의 50%는 지켜 주고 부처 전체의 예산은 온전히 유지하자는 취지이다. 이 정도로도 낭비가 줄고 필요사업에 돈을 더 쓸 수 있어 주민만족도가 올라갈 것이다. 제2단계엔 절감한 A부처 예산을 다른 부처 보조금 사업에도 쓸 수 있도록 하자. 부처간 경쟁이 붙게 되면서 지자체의 지출유연성이 더욱 확대된다. 제3단계로는 50%의 최소기준도 폐지하여 지자체에 주어지는 모든 부처의 보조금을 하나의 주머니로 통합, 자유롭게 지자체가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 국고보조금 취지에 입각해 정부가 정해 준 사업 중에서 고르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포괄보조금의 예외 사업도 기획재정부가 설정할 수 있도록 하자. 심의를 거쳐 극히 일부 사업은 포괄보조금제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상의 포괄보조금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중앙과 지방의 역할분담이 명확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이 돈을 같이 내는 보조금 매칭제도는 폐지하자. 최근의 누리과정, 청년수당 논란도 포괄보조금제를 도입하고 지방이 그 안에서 알아서 쓰도록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지자체를 유치원생 대하듯 사안마다 돈을 줄 것이 아니라 알아서 쓰도록 하자. 그래야 예산도 절감되고 주민도 좋아한다.

박진 KDI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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