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도박 혐의 영장 청구 시기
‘전관 입김’취지 문자 계속 보내
정씨, 구속 뒤 예상 못한 실형에
“홍만표에 속았다” 분노 표출도
검찰 “홍만표가 정운호 달래려고 허언한 것"
정ㆍ홍ㆍ법조 브로커 이민희
통화ㆍ문자 5개월 새 920여회나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걸로 (검찰과) 얘기가 됐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57ㆍ구속기소) 변호사가 해외원정 상습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던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에게 검찰에 ‘전관(前官)의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재판에서 확인됐다.
검찰은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김도형)의 심리로 열린 홍 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에 관한 첫 공판에서 홍 변호사가 정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역들을 공개했다. 홍 변호사는 검찰이 정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시기를 전후한 지난해 9~10월 ‘여기 저기 떼쓴다고 검찰이 기분 나빠하니 감안해서 잘 설명하라’ ‘지금 영장 청구했다고 하니 향후 수사확대 방지 및 구형 등 최소화에 힘써보자’ ‘차장(검사), 부장(검사) 통해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걸로 얘기가 됐다’는 문자메시지를 잇따라 보냈다. 실제로 당시 검찰은 정씨의 회삿돈 횡령 혐의는 공소장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올해 4월 말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진 뒤인 지난 6월에야 검찰은 뒤늦게 140억원대 횡령ㆍ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부실수사’와 ‘성공한 로비’ 의혹이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이에 대해 “홍 변호사가 ‘구속영장이 청구돼 나에게 불만을 품은 정 전 대표를 달래기 위해 허언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고, 횡령죄에 대해선 홍 변호사가 청탁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해명했다.
정씨는 구속 뒤에도 홍 변호사가 검찰 고위 전관이라는 이름값과 자신이 준 거액의 돈값을 할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실형을 면치 못했다. 정씨가 네이처리퍼블릭의 소송 자문 담당인 고모(44) 변호사를 구치소에서 만나 이야기한 접견록 등에는 “홍만표가 수사 당시 ‘조사 안 받고 끝내거나 벌금 내고 끝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은 정씨는 화를 내며 “홍만표가 맡을 때부터 불기소나 벌금으로 처분하도록 얘기 다 됐다는데 결국 실형이 났다. (홍만표는 수사라인은) 다 잡아놨는데 계장을 잡지 못했다고 핑계를 댄다”며 “홍만표에게 속았다”고 K 변호사에게 말했다. 정씨는 올해 1월 말 자신의 친형에게 “나 못 나가면 홍만표 고소해 버릴거야”라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홍 변호사는 도박사건 수사 무마 명목으로 3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법정에서 “홍 변호사는 지난해 9월 30일 정씨가 출석 요구를 받았을 때 ‘사업상 이유로 일주일 정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는 의견서를 낸 게 유일한 공식 변론활동이었다”며 “그 외에는 소위 ‘전화변론’이었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가 수임료를 수사 초기 1억5,000만원만 받았다고 했다가 3억원을 받은 것으로 실토한 것도 정씨가 검찰에 밝혔기 때문에 마지못해 털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의 친형은 홍 변호사에게 ‘바보같이 동생이 다 불었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홍 변호사가 액수를 시인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검찰은 정씨와 홍 변호사, 홍 변호사의 고교 선후배 사이인 법조 브로커 이민희(56)씨의 3자간 통화나 문자내역이 5개월 새 총 920여회나 되는 사실도 밝혔다. 검찰이 지난해 5월 내사에 착수해 10월 6일 정씨를 구속하기까지 정씨와 이씨, 홍 변호사와 이씨가 연락한 횟수다. 서로 잇따라 연락한 순차적 통화가 있었던 날도 68일이나 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홍 변호사는 이날 피고인석에 앉아 차분하게 자신의 조세포탈 등 혐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듣다가 정운호 전 대표 관련 사건 일지가 언급되자 펜을 들어 메모하며 집중했다. 홍 변호사의 변호인은 “구체적인 것은 앞으로 심리과정에서 반박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은 9월 2일 열린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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