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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집단 학살...진짜 살인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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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집단 학살...진짜 살인자는 누구인가

입력
2014.09.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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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훈 지음

후마니타스 발행ㆍ458쪽ㆍ2만3,000원

한국전쟁 대표적 민간인 학살인 국민보도연맹ㆍ거창 사건 추적

진실에 침묵하는 현재에도 경고장

국가는 왜 자국민을 죽였는가. 신간 ‘가면권력’은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꼽히는 국민보도연맹사건(보도연맹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거창사건)을 소재로 근원적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다.

시민단체 민간인학살진상규명국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저자는 이 두 사건을 전쟁의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국가가 자국민을 ‘내부의 적’으로 몰아 조직적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국가-국민 관계를 고민하게 하는 주제”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대량학살은 전쟁의 산물일까’ ‘전시상황에서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과 동일한가’ 등 끊임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사건이 일어난 내ㆍ외적 동기를 추적하고 학살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고찰을 가미한다.

책의 2장과 3장은 보도연맹사건에 대한 국가자료, 군인ㆍ경찰ㆍ피해자의 증언을 엮었다. 저자는 전쟁 당시의 살벌한 풍경을 경찰ㆍ생존자ㆍ목격자의 인터뷰를 통해 재연했다. 1950년 6월 28일 육군 6사단 헌병대 일등 상사로 근무했던 김만식은 강원 횡성과 원주에서 보도연맹원 150명을 사살한 사실을 회고했다. 보도연맹원에 대한 첫 사살로 알려진 사건이다. 김만식은 헌병대장 정강이 횡성 학살을 지휘했고 자신은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확인 사살을 했으며, 원주에서는 자신이 학살을 지휘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처럼 학살이 전국적으로 전개된 양상과 각 기관의 개입, 살해 명령 체계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거창사건을 다룬 4장과 5장은 인민군과 빨치산 토벌을 위해 1950년 9월 창설한 육군 11사단의 작전명령과 이들이 거창군 신원면 일대 주민에게 총을 겨눈 과정을 설명한다. 1951년 2월 10일 신원초등학교 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봉순은 군인들이 와용리ㆍ대현리ㆍ중유리 일대 주민 600여명을 학교 교실 두 칸에 모았다고 전했다. 유봉순은 또 당시 현지 형사인 조용호, 박세복 등이 군의 명령을 받아 300여명을 즉격총살하는 과정도 진술했다.

이승만 정권은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로 구성된 국민보도연맹의 연맹원들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위) 관계자들이 당시 희생된 이들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이승만 정권은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로 구성된 국민보도연맹의 연맹원들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위) 관계자들이 당시 희생된 이들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를 사건 경과에 대한 설명으로 채웠다면 후반부는 사건 이후 국가와 유족간의 대립, 국가권력-국민주권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다. 6장에서는 가해자, 희생자(유족), 생존자들이 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주장을 담았다. 책의 백미인 7장 ‘학살은 전쟁의 산물인가’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1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196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 시선을 고정한다. 민주화 물결이 몰아쳤던 4ㆍ19혁명 이후에도 장면 내각은 “피학살 양민사건은 6ㆍ25 당시 광범위한 교전 중 일어난 부득이한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 역시 반란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용공세력 색출 작업’을 벌여 진상규명을 원하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오히려 ‘빨간 딱지’를 붙였다. 저자는 부당한 정치권력(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이 사라진 뒤에도 국가는 자국민의 억울한 희생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를 벌일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꼬집는다.

그렇다면 전쟁 이후 60여년이 흐른 현재는 어떨까. 저자는 최근 사건과 관련한 두 개의 법원 판결에 주목한다. 3일 부산고법은 울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창원지법은 64년 만에 보도연맹원 10명에 대한 사형판결 재심을 결정했는데 보도연맹 희생자에 대한 재심결정은 지난해 2월 충남 지역에 이어 두번째다. 하지만 저자는 현재 상황을 낙관하지만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집단학살이 불러온 끔찍하고 무서운 또 하나의 폭력인 ‘침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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