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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매수’ 사건은 어떻게 기억될까

입력
2017.02.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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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밉습니다.’

지난 4일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이철근(64) 단장이 물러난다는 뉴스를 보고 한 팬이 구단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전북은 소속 스카우터가 2013년 심판에게 ‘잘 봐달라’는 취지로 돈을 건넨 사실이 작년 4월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그 해 9월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전북에 승점 9점 감점, 1억 원의 벌과금 징계를 내렸다. 또한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출전 관리 기구(Entry control body)’는 지난 달 18일 전북의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참가를 불허했다. 전북은 불복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지만 결국 기각 당했다. 이 단장 사임 소식은 CAS 판결 다음 날 나왔다. 팬이 쓴 글 중 ‘수고했다’는 건 전북을 빅 클럽으로 만든 노력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고 ‘밉다’는 건 심판 매수 사건에 대한 실망스런 대처를 뜻한다. 2003년부터 햇수로 15년 동안 구단 사무국장과 단장으로 전북에 몸담은 이 단장의 공과(功過)를 적확하고 뼈아프게 표현했다.

이 단장은 전북으로 오기 전 1995년부터 3년 동안 울산 현대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그에게 직접 당시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이 2002년 한ㆍ일월드컵 유치에 총력을 기울일 때인데 하루는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이 울산공설운동장(지금의 울산종합운동장)을 방문했다. 초봄이라 잔디색깔이 누랬다. 그 때는 대부분 운동장에 한국형 잔디가 깔려있었다. 이 단장은 부랴부랴 직원들을 총동원해 그라운드를 초록색 특수 페인트로 물들여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발상이지만 뛰어난(?) 임기응변 덕에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나라의 잔디가 이 모양이냐’는 핀잔은 면했다. 그가 이런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전북을 지방의 변방 구단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일류 클럽으로 발돋움시켰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작년 4월 터진 심판 매수 사건 후 구단의 대처는 그래서 더 실망스럽다. ‘구단은 관련 없다’는 꼬리 자르기로 뭇매를 맞더니 지금까지 진정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모습이 없었다. 전북은 각기 다른 네 개의 주체(프로축구연맹, 법원, AFC, CAS)로부터 모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철근 전북 현대 단장. 전북 제공
이철근 전북 현대 단장. 전북 제공

‘스카우터가 왜 사비를 털어 심판에게 수시로 돈을 건넸을까.’

‘이 돈은 매수가 목적이 아닌 정말 단순 용돈이었을까.’

‘심판에게 용돈을 건네는 악습은 전북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심판 매수 사건이 드러난 지 10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비단 기자 뿐일까.

이번 사태를 통해 악재에 대처하는 한국 축구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제 사회는 심판에게 돈을 준 행위를 심각하게 바라보는데 우리는 반대로 ‘운이 나빠 걸린 일’ 정도로 애써 축소하고 수습하려 했다. 전북의 미흡한 사후 처리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는 매 순간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발전한다. 특히 실패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는 심정으로 칼을 대야 ‘우후지실’(雨後地實ㆍ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한국 축구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당장 1년 후, 10년 후 그리고 100년 후 이번 사건은 한국 축구사에 어떻게 기억될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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