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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혁명성

입력
2017.07.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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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 새로운 실험에 세계가 촉각

신선한 시도지만 위험한 승부수란 우려도

재원 마련 방안에 솔로몬의 지혜 끌어내야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1962년에 내놓은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새롭게 제시한 개념인 ‘패러다임 (paradigm)’은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의 체계,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 등을 의미한다.

쿤이 ‘패러다임 전환’의 사례로 든 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세계관 변화다. 오랫동안 과학계는 지구를 중심에 놓고 천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천체를 관측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현상(anomaly)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가 움직이는 건 아닐까라고 뒤집어 생각했다. 이때부터 비로소 이상현상이 해소됐다. 하지만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유죄 선고를 받았던 갈릴레오는 정작 350여년이 지난 1992년에야 교황청에 의해 공식 복권됐다.

패러다임 개념은 이제 과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주 쓰인다. 하지만 이 개념에는 쿤이 저서 제목에서 밝혔듯이 혁명적 의미가 담겨 있다. 천동설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동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현상으로 과학이 위기를 맞았지만, 지동설이라는 새 패러다임이 등장, 기존 패러다임과 경쟁해 승리하면서 혁명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과학혁명은 그래서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세워지는 것과 같은 정치ㆍ사회적 혁명과 비교되기도 한다. 혁명은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갈리는 법이다.

문재인 정부가 새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보고서에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중대한 혁명적 변화로 여기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대전환한다는 선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핵심은 지금까지 기업이 성장의 중심이었으나 앞으로는 개인을 중심으로 경제 문제를 파악하겠다는 선언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듯, 경제를 기업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한 역발상으로 접근해 기업주도형에서 소득주도형 경제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의 기업주도 성장 패러다임으로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이상현상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기에,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새 패러다임을 등장시켰다고 비유할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일자리 창출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가계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늘고 생산과 투자도 늘어나 다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세계 최초의 실험’ ‘가보지 않은 길’ ‘위험한 승부수’ 등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전망과 결과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복지국가 혹은 국가 부도라는 극단도 배제할 수 없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신선한 시도임에 틀림없으나, 당장 막대한 재정지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성장을 방해하고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일자리 복지 교육 등에 쓸 예산 지출증가율을 경상성장률(실질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보다 높게 가져가기로 했다. 성장 속도보다 지출 속도를 빠르게 하는 이색적인 접근법이다. 그렇다면 재원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랏빚을 늘려 후세에 짐 지우겠다는 것인가.

갑자기 우리 대륙붕에서 석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재원마련 해결책은 증세 말고는 찾기 어렵다. 새 정부가 내세운 178조원은 초대기업과 고소득층을 상대로 한 ‘핀셋 증세’로는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보편 증세는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가니 딜레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세금 때문에 역풍을 맞은 정권이 많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문 정부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실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의 기대는 폭발적이다. 게다가 이미 세계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특이한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이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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