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5.11.12 13:37
수정 : 2015.11.12 13:37

[김월회 칼럼]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진면목

등록 : 2015.11.12 13:37
수정 : 2015.11.12 13:37

지난 9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국회의원의 빈소인 대구시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유 전 원내대표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뉴시스

우정은 공적(公的)일까 아니면 사적(私的)일까. 사적이라는 답변이 절대 다수이리라. 그렇다면 사적 우정이 역사에 기록될 만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특히 저 옛날처럼, 후세에 전할 가치가 있는 것만을 역사책에 싣는다는 관념이 힘 있던 시절이라면. 한데 ‘사기’라는 한자권 최고의 사서에는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이 기술되어 있다. 우리가 ‘참된 우정’ 하면 떠올리는 ‘관포지교’의 본말이 나름 상세하게 실려 있다.

더 의외인 것은, 기록된바 이 둘이 맺은 우정이 너무나도 사적이라는 점이다. 포숙아는 같이 장사를 해서 얻은 이문의 대다수를 취한 관중을 가난하다는 이유로 문제 삼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전쟁에서 세 번이나 도망쳐온 관중을 봉양할 노모가 계셔서 그랬다며 용서했다. 그렇다면 당시 전장에서 죽어간 숱한 이들은 봉양할 노모가 없어서 도망치지 않은 채로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관중을 용서하며 내세운 포숙아의 근거는 그저 사적이고 지극히 편파적이다. 한마디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본받을 만하다고 하기엔 많이 민망하다. 물론 관중은 훗날 포숙아의 무한 신뢰에 멋지게 부응했다. 재상 자리에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조국을 중원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들었고, 군주를 뭇 나라를 호령하는 반열에 오르게 했다. 그만큼 내치와 외교 모두에서 빼어났음이니 역사가 그를 ‘재상 중의 재상’으로 기억함은 절대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불세출의 공적을 세운 후 이 모두가 포숙아 덕분이라며 그를 상찬했으니, 참으로 사서에 실릴 만한 우정처럼 보인다.

하여 그들의 저 ‘아름다운’ 우정을 본받고자 젊어서부터 벗을 등치고 공적 의무를 팽개쳤다고 하자. 과연 누구나 다 관중 같은 위인이 되는 것일까? 단적으로, 젊은 시절 그들의 처사와 관중의 빛나는 업적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그 둘이 젊어서 보인 ‘우정 행각’도 결코 기념할 만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관포지교’는 대체 어떠한 우정을 기렸다는 말일까?

‘관포지교’가 가장 먼저 기록된 사서는 ‘춘추좌전’이었다. 이에 따르면 제나라는 양공이 즉위한 이래 국정이 몹시 문란해졌다. 그러자 포숙아는 “군주가 백성을 사악하게 만드니 변란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차기 군주 감으로 소백을 모시고 도망쳐 나왔다. 관중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규를 모시고 이웃 노나라로 도망쳐 나왔다. 그렇게 십 년 남짓 흐른 후, 급기야 양공은 살해당했고 포숙아의 예측대로 제나라는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때 포숙아가 재게 움직여 제나라를 장악해 모시던 소백, 곧 환공을 군주로 앉혔다. 그러곤 바로 노나라를 공격, 그들의 손으로 망명 중인 규를 죽이게 했고, 관중은 생포하여 제로 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한 후 자신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것이 ‘춘추좌전’에 실린 관포지교의 대강이다. 건조한 문체에 그 둘이 행한 사실을 담아냈을 따름이다. 비슷한 시기에 수행된 관련 기술도 대체로 이러했다. 가령 ‘한비자’에는 망국을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댄 관중과 포숙아가 미리 물색해둔 군주 감을 각자 섬기되, 먼저 성공한 사람이 서로를 구해주기로 약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춘추좌전’에서 포숙아가 관중을 산 채로 압송해 귀국 후 그를 풀어준 것은 그때부터 세워둔 치밀한 기획의 소산이었음이다. 또 다른 책은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하고 자신은 물러난 것도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일러준다. 포숙아는 조국을 중원 최고 강국으로 만드는 데는 관중이 더 적합함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때가 되자 이를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기’에 앞서 관포지교의 실상을 전해주는 기록은 적지 않다. 그런데 거기에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그 둘과 관련된 사적인 일은 거의 기술되어 있지 않다. 포숙아가, 관중이 이익 배분과정에서 자신을 속여도 용서해주고 전쟁에서 도망치는 비겁한 짓을 해도 이해해줌으로써 서로 막역한 지기가 되었다는 식의 서술은 적어도 역사책에선 보이질 않는다. 대신 함량 미달의 군주 탓에 국가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웠을 때 바람직한 국가 미래 창출을 위해 그 둘이 보여준 공적 활동과 사심 없는 면모가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이 관포지교의 참 모습이다. 그들의 우정이 가치를 발한 차원은 그들끼리만 싸고도는 사적 영역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적 영역이었다. 배신과 패륜을 일삼아도 사적 핑계를 대며 눈감아주는 것 따위가 참된 우정일 수 없다는 뜻이다. 공적 이익을 앞세울 줄 아는 이들이, 공공의 뜻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서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목표의 공유에서 비롯된 견결한 상호신뢰, 이것이 관포지교의 핵심이자 기리는 바였던 것이다.

이름하여 ‘공적 우정’으로서의 관포지교! 집권세력이 자기들만의 의리를 운운하며 실정에 실정을 거듭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포지교의 이러한 진면목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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