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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IMF 20년, 통합 자산 삼아야 할 충격의 공유

입력
2017.12.04 14: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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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한국정부는 IMF 구제금융 지원합의서에 서명했다.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가 가져온 충격을 실로 엄청났다. IMF가 제시한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대대적 구조조정과 각종 개혁조치로 제도적, 정책적 환경이 급변했고, 개인의 삶에도 직접적 타격을 주었다. 국가적 수준에서 발생한 쇼크는 개개인의 삶과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IMF는 과연 한국사회 인식지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20년이 지난 지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보통 학계에서 특정 역사적 사건이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코호트 효과(cohort effect)와 피리어드 효과(period effect)로 구분된다. 특정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생각의 변화가 주로 태도 형성기(18~25세)의 세대집단에 편중될 경우는 코호트 효과로, 전 사회 구성원에게 일관되게 나타나면 피리어드 효과로 분류한다.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IMF의 충격은 코호트 이론에 근거한 소위 ‘IMF 세대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대체로 IMF 당시 성년기를 보낸 70년대 생)을 대상으로 이들이 다른 세대 코호트와 비교하여 어떠한 정치사회적 특성을 보이는지에 관심을 두어왔다. 이들이 30대였던 2000년대에는 주로 ‘안티 한나라당 세대’로, 40대로 접어든 2010년대에는 ‘정치 불신’을 대표하는 코호트로 묘사되었다. 한편 전후 산업화세대와 386세대까지 이어지던 국가주의 및 공동체주의 대신 개인주의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특성이 주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IMF의 충격은 단지 ‘IMF 세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장 2016년 손병권 교수 연구팀과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세대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2000년 이전 역사적 사건 중 자신의 사고방식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을 3순위까지 조사한 결과 IMF를 꼽은 응답이 63%로 가장 높았다. 88올림픽 48%, 한국전쟁 38%, 광주민주화운동 27% 순이었다. 이들 사건을 꼽은 응답이 특정 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면 IMF를 꼽은 응답은 전 세대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당시 경제적 충격도 특정 세대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당시 청년기를 보낸 소위 IMF 세대는 취업시장에 나가보지 못하거나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들의 부모인 장년 세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 도산을 경험하며 가족을 지키지 못한 도덕적 책임도 짊어졌다. 노년세대는 노년세대 대로 가족의 부양도, 국가의 복지도 기대할 수 없는 생소하면서도 처절한 현실에 직면했다. 피리어드 효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당시의 충격이 단기 효과로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가족 규범의 해체다. IMF 이후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더욱 절박해졌다. 대학진학률은 상승했고, 사교육비 부담은 줄지 않았다. 대신 출산을 줄이고 부모를 부양하겠다는 책임의식이 낮아졌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었다.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가정이 무너지면서 개인과 가족 우선주의를 강화시켰고, 친족, 이웃 공동체조차 깨진 지 오래다. 한국사회는 저신뢰 사회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IMF가 부정적 영향만 남긴 것은 아니다. 전사회적으로 한국사회의 탈이념화와 실리주의가 자리 잡을 여지를 넓혔다. 과거 냉전보수체제의 절대권위는 IMF에 타격을 받았다. 과거 냉전시기 금기였던 복지와 분배에 대한 요구가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받기 시작했다. 동시에 경제주권의 상실까지 경험한 국민들은 특정 이념에 올인 하지 않는 현실감각을 키웠다. 또한 IMF가 남긴 명암은 전 세대가 공유하는 역사적 기억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처럼 세대 갈등, 이념 대결의 소재로 작동한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다르다. IMF의 기억은 통합과 연대의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한울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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