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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판결… 미중 선택 강요 받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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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판결… 미중 선택 강요 받는 한국

입력
2016.07.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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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이어 또다시 외교 시험대

전문가들 “무입장 대응도 방법”

지난 2015년 10월27일 중국의 인공섬인 남중국해 스카보러 암초 근해에서 중국 해안경비대 보트가 필리핀 어선 '레나토 에탁'호 주위를 맴돌며 경계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5년 10월27일 중국의 인공섬인 남중국해 스카보러 암초 근해에서 중국 해안경비대 보트가 필리핀 어선 '레나토 에탁'호 주위를 맴돌며 경계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로 미국과 중국간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우리 정부가 남중국해 문제로 다시 외교 시험대에 올랐다. 사드 배치가 국가안보 차원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국익의 영역이라고 보기 힘든 필리핀과 중국간 남중국해 분쟁 문제에서도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 받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분쟁 판결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은 선전ㆍ압박 공세를 펼쳤다. 중국은 정부ㆍ관영 매체를 총동원, 자국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 수를 거론하며 세 과시에 나섰다. 관영매체 관찰자망(觀察者網)은 PCA의 판결을 하루 앞둔 11일 “현재 최소 66개 국가의 원수, 총리, 외교부, 외교장관, 국방장관 등이 중국의 남해(남중국해) 입장을 지지한다는 명확한 표시를 했다”며 “이런 위세는 상대(필리핀 등)를 훨씬 압도한다”고 열을 올렸다.

특히 중국은 주중 대사관과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우리 정부에도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올 초부터 직간접적으로 주중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한 한국의 입장을 요구해왔고, 최근에도 그런 요구가 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시진핑 시대 중국의 팽창 노선과 아시아 주도권을 방어하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충돌하는 최전선이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민감성으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거나, ‘평화적 해결’ ‘국제규범 준수’ 등의 원론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진작부터 우리 측에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 준수에 실패한다면 한국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당시 즉답을 피했던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남중국해 행동선언(DOC) 상의 비(非) 군사화 지지’ 등을 표명했다. 원론적 입장이긴 했으나, 미국 측 주장에 다소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은 한발 더 나가 최근에는 남중국해 판결에 대한 지지 표명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PCA가 중국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관계국은 판결에 따르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입장을 밝힐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PCA 판결이 구속력이 없다는 중국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PCA가 이날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의 근거로 주장하는 구단선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해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면서 우리 정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미국 요구대로 이 판결을 지지하면서 “관련국은 이를 준수하라”는 입장을 밝힐 경우 한중 관계는 되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일현 중국 베이징 정법대 교수는 “불리한 판결로 궁지에 몰린 중국으로선 한국이 분명하게 미국 편을 들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며 “무 입장으로 대응하는 것이 한중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PCA 판결에 앞서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국제적으로 확립된 행동규범에 따른 평화적 문제 해결을 주장해왔다”며 “모든 당사국은 남중국해 행동선언(DOC)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이행, 비(非) 군사화 공약준수, 행동수칙(COC)의 조속한 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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