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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주 기자

등록 : 2017.04.20 17:19
수정 : 2017.04.20 17:19

한국형 스탠딩 토론, 미국과 달랐던 4가지

등록 : 2017.04.20 17:19
수정 : 2017.04.20 17:19

19일 진행된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에서 후보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KBS 캡쳐화면

지난 19일 진행된 스탠딩 토론 방식의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은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토론방식에 대한 깊은 분석이나 고민 없이 달려든 방송사와 후보자들 때문에 토론의 취지는 무색해졌고, 유권자들의 실망만 커졌다.

지난해 대선을 치른 미국도 선거에 앞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스탠딩 토론을 벌였지만, 우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① 서있으면 다 ‘스탠딩 토론’?

미국과 우리나라 대선후보 스탠딩 토론의 가장 큰 차이는 토론자들의 태도다. 우리나라 후보자들은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스탠딩 토론의 목적은 후보자들끼리의 논쟁이 아니다. 유권자에 대한 설득이다. 사전자료나 원고 없이 오로지 후보자 자신의 신념과 정책, 공약에 기대 ‘왜 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돼야 하는가’ ‘상대 후보보다 내가 나은 점이 무엇인가’를 유권자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일어서서 토론을 한다는 건 유권자 존중의 의미도 포함돼 있기에 “무릎이 아프다”며 ‘체력장’에 비교할 일은 아닌 셈이다. 바스트샷(카메라 촬영 시 화면에 가슴까지 화면에 나오는 것) 중심의 방송 화면은 실제 ‘스탠딩 토론’인지 아닌지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후보 스탠딩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유튜브 캡쳐화면

② 설득의 대상: 상대 후보 vs 유권자

지난해 클린턴과 트럼프는 토론 도중 유난히 ‘여러분’이란 말을 많이 썼다. 비록 상대 후보와 토론하고 있지만, 이 토론은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것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난상토론 도중 뭔가 확인해야 할 부분이 생기면 “여러분, 제 홈페이지에 가서 꼭 확인해보세요”라고 말한다. 국내 후보들처럼 “OO후보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보세요”라며 방송을 시청하는 유권자를 무시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 국내 후보자들이 ‘여러분’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 때밖에 없었다. 이들이 벌이는 논쟁 틈새에서 유권자를 설득하려는 노력이나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미국 대선후보 스탠딩 토론에서 후보자들은 유난히 '여러분'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유튜브 캡쳐화면

③ 설득의 기술: 상대 후보 깎아내리기 vs 유권자와 공감 나누기

클린턴과 트럼프는 당시 1차 스탠딩 토론에서 약 100분 동안 꼿꼿이 서서 유권자들을 설득했다. 설득의 과정은 이렇다. ‘상대의 과거 행적 지적 → 그것이 현재에 미친 악영향’ 또는 ‘현재 상황 설명 → 상대편의 정책이 향후 미칠 악영향’을 차례로 지적하고, ‘자신의 정책 설명 → 이 정책을 도입했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 등으로 설명한다. 단순히 상대 후보의 과거를 들춰내 ‘맞냐, 틀리냐’ ‘맞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등의 허무한 네거티브 공방만 벌였던 국내 후보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비전을 드러내는 방식도 다르다. 미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려 노력한다. 클린턴의 경우, 트럼프를 공격할 때 “트럼프는 아버지로부터 약 140억달러 정도를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때문에 트럼프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자들을 더 많이 도와줄수록 모든 것이 더 나아진다고 믿는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 경험은 다르다. 내 아버지는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했고, 직물 다루는 일을 했다”라며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내가 믿는 것은 중산층, 즉 여러분의 학업, 기술,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라 설명했다. 상대 후보와 자신의 가치관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면서 자신의 가치관이 보다 돋보일 수 있게, 보다 많은 공감을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색깔론을 이용해 상대 후보를 깎아 내리기만 했던 국내 후보자들보다 한 수 위다.

④ 사회자의 역할: 진행자 vs 유권자 대표

사회자의 역할 또한 달랐다. 미국 대선후보 스탠딩 토론의 경우, 사회자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토론의 진행자로서 토론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동시에, 유권자 대표로서 해당 토론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정확히 지적한다. 실제 당시 대선 1차 토론 사회를 맡은 NBC방송 심야뉴스 앵커 레스터 홀트는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모든 이슈를 다룰 수는 없지만,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은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가겠다”라고 명백히 밝혔다.

지난해 미국 대선후보 스탠딩 토론에서 사회자를 맡은 NBC방송 심야뉴스 앵커 레스터 홀트가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가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쳐

가령 그는 후보자들이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구체적인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나오면 과감하게 질문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토론 도중 트럼프가 “2,5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빼앗긴 일자리를 다시 가져오겠다”고 한 것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또 당시 대선에서 큰 논란이 됐던 트럼프의 소득세 신고서 미공개에 대한 얘기가 토론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자, 직접 질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가 “클린턴이 삭제한 개인 이메일 3만3,000개를 공개하면 나도 공개하겠다”라고 맞서자 클린턴에게 “협상이 가능한가”라며 전격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이 트럼프의 소득세 신고서 미공개에 대해서만 계속 비난할 뿐 질문에 답하지 않자 “트럼프가 장관의 이메일을 문제 삼았는데, 다시 답변해달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일 진행된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의 진행을 맡은 박영환 앵커. KBS 캡쳐화면

하지만 국내 스탠딩 토론에서 사회자의 역할은 미비했다. 토론의 시작과 끝, 그리고 공통질문을 던질 때 외에는 사실상 역할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토론 내용이 삼천포로 빠지고 있는데도 그저 제3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 나서지 않았다.

시간총량제도 아쉬운 부분이다. 미국에서도 후보자들의 발언 시간은 15분씩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후보간의 질의응답 보다는 서로의 주장에 반박을 이어가며 그 속에서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는 식이다. 질문은 주로 사회자가 던진다. 하지만 국내 토론에선 9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후보자들끼리 질의응답까지 주고받다 보니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은 일부 후보들은 상대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방에 휩쓸려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물론 5명이나 출연한 현실적인 한계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있으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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