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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독재는 서서히 부지불식간에 쳐들어온다

입력
2016.0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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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아침

프라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휴먼어린이ㆍ40쪽ㆍ1만3,000원

그림책 한 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꿨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파시스트, 인종주의를 표방하는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이 결선투표까지 오르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러자 사람들의 무감각함에 경각심을 느낀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림책 ‘갈색아침’을 소개한다. ‘갈색 아침 현상’이라 일컫는 이 사건은 엄청난 반향이 일으키며 프랑스에서만 2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면서 마침내 극우파의 집권을 막아내는 데 큰 힘을 보탠 것이다.

어느 화창한 오후, 친구와 차를 마시던 주인공은 친구가 개를 안락사시켰다는 얘기를 듣는다. 지난달에는 갈색이 아닌 고양이를 모두 죽이라는 법이 생겨 자신도 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를 죽여야 했다. 정부는 늘어나는 고양이의 개체수가 문제라면서 갈색고양이가 도시에서 살기 적합하다고 했다. 뭔가 잘못된 듯싶기도 했지만, 주인공은 별 저항 없이 법을 따른다. 계속해서 수상쩍고 찜찜한 일들이 이어진다. 갈색이 아닌 개를 죽이는 법이 옳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한 신문과 출판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갈색 법을 지지하는 갈색신문만 남게 되었다. 세상에 갈색이 아닌 모든 것들은 제거되어 갔다./

고양이 개체 통제 작전에 돌입한 정부는 갈색이 아닌 고양이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지만 이는 결국 갈색이 아닌 모든 것의 제거 광풍으로 이어진다. 휴먼어린이 제공
고양이 개체 통제 작전에 돌입한 정부는 갈색이 아닌 고양이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지만 이는 결국 갈색이 아닌 모든 것의 제거 광풍으로 이어진다. 휴먼어린이 제공

이젠 오히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갈색’이란 단어를 모든 말에 붙이며 법을 준수하는 착한 사람처럼 굴었다.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언제까지나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부는 심지어 과거에 갈색이 아닌 개와 고양이를 키웠던 것까지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인들이 친구를 잡아가고 자신의 집 앞에까지 들이닥쳤다. 주인공은 그제야 깨닫는다. 독재의 올가미에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어느새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마저 박탈되어버렸다는 것을!

갈색은 보수와 안정을 뜻하는 색채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치의 파시즘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림의 색채는 독자들에게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연상시키며 경종을 울린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문득, 갈색 군복의 군인이 대문을 두드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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