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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항공사에 기상정보 제공 ‘10년간 혈세 13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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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항공사에 기상정보 제공 ‘10년간 혈세 1300억’

입력
2018.03.02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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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정보 생산 비용 연 190억

작년 항공사들 사용료로 14억 내

기상청 원가 회수율 25%안 제시

국토부 “항공업계 부담 커 안돼”

협상 1년 넘게 평행선 달려

국내선 면제ㆍ외국과 형평성 문제도

기상 악화로 제주국제공항의 활주로가 폐쇄됐던 지난달 초 기상ㆍ항공업계 관계자들은 폭설보다도 상공의 변덕스러운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 착륙 때 맞바람이 불면 파일럿은 엔진출력을 줄여 적정고도를 유지하는데 갑자기 뒷바람으로 바뀌면 고도가 급격히 떨어져 항공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 다행히 제주공항에는 당시 수 차례 윈드시어(돌풍) 경보가 발령, 착륙을 지연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해 아찔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상청이 민간 항공사에 제공하는 기상정보 덕이었다.

이렇게 민간 항공기 전용으로 제공되는 기상정보 생산 비용은 연간 190억원 안팎. 하지만 지난해 국내외 항공사들이 사용료로 부담한 금액은 14억원을 조금 웃돌았다. 170억원이 넘는 적자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워야 했다.

항공사들이 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상정보 덕에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지만 정작 이 정보의 생산비용 90% 이상은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다. 이렇게 투입된 세금이 최근 10년간 1,300억원. 약 3년 주기로 이뤄지는 사용료 인상 협상이 시한을 넘어 장기 난항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상폭은 미미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국민 혈세로 항공사 수익을 떠받치는 기형적 구조가 지속되는 셈이다.

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신창현 의원실이 기상청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두 기관은 지난해 2월부터 항공 기상정보 사용료 현실화를 위한 인상 협의에 들어갔지만 1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기상정보 사용료에 대해 각국 기상당국이 가입된 세계기상기구(WMO)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용자(항공사)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기상법도 이에 기반해 기상청과 국토부의 협의를 통해 사용료를 부과ㆍ징수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민간 항공기 전용으로 제공되는 기상정보를 생산하기 위해 지난해 투입된 예산은 저층윈드시어 관측장비(LLWAS) 등 각종 장비의 감가상각비, 인건비, 연구비 등 189억5,0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국제선 항공기에 징수되는 1대당 기상정보 사용료는 착륙 시 6,170원, 영공통과 시 2,210원에 불과하다. 국내선 항공기는 단 한 푼도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이렇게 작년에 징수된 사용료는 14억3,500만원, 원가 회수율이 7.7%에 불과했다.

기상청은 일단 원가 회수율 25%를 목표로 착륙 시 1만9,500원, 영공통과 시 7,98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항공사 대리인 성격으로 사용료 협상에 나서는 국토부는 인상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항공업계 부담이 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제시안은 7.5%씩 3년에 걸쳐 단계별로 총 22.5% 인상하자는 것. 이 경우 3년 뒤에도 원가 회수율(9.6%)은 10%를 넘지 못한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외국 항공기상정보 사용료와의 형평성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행정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달리 전체 항행서비스에 대해 사용료를 부과하는 유럽연합(EU) 등 다른 선진국들은 대당 환산한 평균 사용료가 미국 5만210원, 프랑스 2만3,190원, 독일 1만5,590원 등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의 최소 2배 가량, 많게는 5배 이상에 달한다. 우리 민간 항공사들이 외국에는 훨씬 비싼 사용료를 지불하고, 반대로 외국 항공사들은 우리 기상정보를 염가에 이용하는 것이다. 더구나 국내선 기상정보 사용료를 계속 면제해 줄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관된 기준 없이 오락가락하는 기상청의 협상 전략도 사용료 현실화에 걸림돌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2월 1차 협상에서 2023년 국내ㆍ국제선 원가 회수율 100%를 목표로 착륙시 5만1,110원을 제시했다가 2차 협상에서는 국제선에 대한 원가 회수율 100% 목표로 착륙시 4만6,150원으로 물러섰다. 그러다 3차 협상에서는 원가 회수율 60%(올해는 25%)로 또 다시 뒷걸음질쳤다. 신창현 의원은 “국토부가 항공산업 진흥이라는 명목으로 사용료 인상을 꺼려 매년 200억원 가까운 적자를 혈세로 메우고 있는 상황이 지속돼선 안 된다"며 "기상청 또한 합리적인 협상안과 징수방안을 마련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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