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생이 교수신분증 없이 대출
“그릇된 관행 부추겨” 학생들 비판
“이제 학생들에게 도서 셔틀(심부름)도 시키겠다는 겁니까?”
서울대 중앙도서관이 스승의날 기념으로 교수를 위한 대리대출제도를 만들어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조교 등에게 대리대출을 시키는 교수들의 음성적인 관행을 양성화하겠다는 게 도서관 측 입장이지만, 학생들은 “옳지 않은 관행을 없애기는커녕 더 부추기겠다는 행태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6일 서울대에 따르면 중앙도서관은 대리대출자를 미리 도서관에 등록하면 교수 신분증 없이도 대신 책을 빌릴 수 있는 ‘교수 대리대출 서비스’를 15일부터 내년 2월말까지 시행하기로 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최근 공지했다. 이를 통해 이날 오후까지 이틀 동안 총 4명의 교수가 서비스를 신청했다는 게 도서관 측 얘기다.
포스터를 접한 학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학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교수 본인의 잡무를 학생에 시키는 것은 잘못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대통령도 스스로 밥 떠먹는 시대에 무슨 짓거리냐” “교수한테 학생을 책 셔틀로 활용하라고 권장하는 것이냐” 등 도서관 측을 성토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스승의날(15일)에 권유하고 시행할만한 바람직한 서비스, 이벤트도 아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서이종 중앙도서관장은 “각 교수마다 연구ㆍ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선발된 조교가 있다”며 “공동연구를 위한 도서대출 때마다 조교들이 교수 신분증을 들고 와 대출을 해 가는데, 일일이 교수 본인이 맞는지를 전화로 확인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없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 인권침해 논란과는 상관 없이, 기존에 해 오던 음성적 관행을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게 서비스의 취지라는 해명이다.
이 같은 해명에도 학생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교수 지시로 대리대출 등 잡무를 해본 적이 있다는 서울대 대학원생 A씨는 “연구장학생을 개인연구실에 ‘방돌이’로 앉혀 두고 갖가지 업무를 시키며 비서로 활용하는 행태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관계자도 “학교 차원에서 교수 학생 관계에서 생기는 갑(甲)질 문제를 규제하는 게 먼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되는 관행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도서관이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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