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상처 안고 학교 떠나는 단원고 졸업생들
학생.학부모.교직원들만 참석
50분간 비공개로 조용히 치러
희생학생 명예졸업식은 취소
“우리에겐 세월호 사고라는 겨울이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병원생활, 새로운 환경의 연수원, 다시 돌아온 학교, 그리고 수많은 시선과 비난들…. 아마 모두에게 힘겨운 여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학창시절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겪었고, 그것을 함께 극복하고 성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 졸업식. 졸업생을 대표해 연단에 오른 3학년 학생회장 최모(19)양은 울먹임을 참지는 못했다. 하지만 의연하게 답사를 이어갔다. 담담히 아픔을 회고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스스로 강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끔찍한 기억을 간직한 단원고 졸업생 86명이 학교를 떠나는 날의 분위기는 여느 졸업식장과는 달랐다. 상인들은 자취를 감췄고, 20대의 시작을 축하하는 떠들썩한 잔치도 없었다. 안산시내 곳곳에는 “별이 된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주세요. 미안합니다”라고 쓰인 노란색 현수막이 걸렸다. 전국의 시민들이 졸업생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내건 것이다.
오전 10시 30분 졸업식 시간이 다가오자 3학년 학생들과 가족들이 하나 둘 교정에 들어섰다. 졸업생들 가슴과 가방엔 하나같이 노란색 리본 모양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한 학부모는 “졸업식이라는 설렘 때문인지 아들이 그나마 밝은 표정으로 학교를 찾았다”며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졸업식은 생존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만 참석한 가운데 50여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학교 측은 비표를 소지해야만 입장을 허용하는 등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지난해 생존학생들이 졸업하는 선배들을 위해 축하공연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재학생 대표인 2학년 배모(18)군은 송사를 통해 “누가 뭐라 해도 당당하게 살아가시길 바란다”며 선배들을 응원했다.
한 생존학생은 졸업식 끝나고 뭐가 먹고 싶냐는 어머니에게 “짜장면이요”라며 웃었다. 해맑게 웃으면서도 친구들을 잊지 않았다. 다른 생존학생은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 봐 부모님에게 꽃다발을 들고 오지 말라고 했다. 함께 졸업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먼저 하늘로 간 250명의 친구들을 기억하자며 생존학생 부모들은 장미꽃 250송이를 준비해 졸업생들에게 나눠줬다. 오지연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는 “사회에 나가 그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 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가족들도 자식의 친구였을 졸업생들을 응원했다. 고 이영만 학생의 어머니 이미경씨는 “아들이 짝사랑했던, 페이스북으로 고백도 했던 여학생이 이번에 졸업했는데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어른들 때문에 고생했을 아이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고 김동혁군의 아버지 김영래(46)씨는 “마음껏 축하해줄 수가 없어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학부모 7~8명과 2학년 교실에 앉아있다가 나왔다”며 “졸업하는 아이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초 이날 함께 열리기로 했던 희생 학생들의 명예졸업식은 취소됐다. 유가족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는데 명예 졸업식은 온당치 않다”며 학교 측에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대신 이들은 낮 12시 안산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과 시민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촐한 추모식을 열고, 단원고까지 2㎞ 가량 침묵행진을 했다. “세월호를 건져라, 진실을 밝혀라” “우리 교실을 지켜주세요”이라고 적힌 배지의 글귀가 목소리를 갈음했다.
졸업식은 함께 하지 못한 대신 유가족들은 손에 국화꽃 한 송이씩을 들고 2학년 교실에 머무르며 자녀를 추억했다. 고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46)씨는 “사고 전 과학의 달 행사에서 아들이 1등을 했는데 졸업식이 끝났으니 이제 그 상장을 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실 뒤편 ‘꿈 게시판’을 가리키며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에 진학하겠다고 당당히 적었던 아들이었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고 박진수군의 아버지 박병규(48)씨는 “졸업장을 내일 분향소에 가져다 줄 거다. 졸업장 받고 천국에서 친구들과 잘 놀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유가족들에게 추억의 공간이 되어 준 2학년 교실은 졸업식과 함께 단원고 건너편 건물로 이전이 논의되고 있다. 후배들이 공부할 교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새로운 교육이 단원고에서 시작되기 위해서라도 교실은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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