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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위 노동자들에 손편지 쓰며 공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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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위 노동자들에 손편지 쓰며 공감할 수 있기를…”

입력
2018.07.04 2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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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PD 김다은ㆍ프리랜서 정소은씨

75m 굴뚝 위 235일째 농성 중인

노동자 홍기탁ㆍ박준호씨 위한

모금ㆍ손편지 쓰기 운동 시작

“노동운동이 점점 일상과 괴리

새 방식의 시민연대 보여줄 것”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앞 농성천막에서 '마음은 굴뚝같지만' 팀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앞 농성천막에서 '마음은 굴뚝같지만' 팀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노동자 두 명이 75m 굴뚝 위에 오른 지 235일이 흘렀다(4일 기준). 지난해 11월 12일,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씨는 모기업 스타플렉스의 고용승계와 노사 합의사항 이행 등을 요구하며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의 세 번째 굴뚝으로 올라갔다. 살을 에는 맹추위가 지나가고, 굴뚝에서 내려다 보이는 안양천 물가에는 어느덧 녹음 무성한 여름이 찾아왔다.

CBS 라디오PD 김다은(32)씨와 프리랜서 기획자 정소은(46)씨는 굴뚝 위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다. 이름하여 ‘마음은 굴뚝같지만’이다. 김씨와 정씨는 “굴뚝과 땅 사이의 거리가 먼데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 안타까웠다”고 입을 모았다. ‘어떻게 다시 시민들 관심을 환기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 경험이 전무한 초보 활동가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에 생각해낸 것이 자발적인 모금에 기반을 둔 ‘손편지 쓰기’ 운동이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팀은 지난달 19일 크라우드펀딩(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 모집)을 시작해 10일 만에 목표금액인 800만원을 훌쩍 넘겼다. 모금된 돈으로는 굴뚝이 그려진 편지지와 굴뚝 형상 유리컵을 제작하고, 서울 대학로의 책방과 마포구 카페에 우체통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시민들이 쓴 손편지는 정기적으로 굴뚝 위로 올려 보내진다.

프로젝트 시작은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하의 날씨에 두 노동자가 굴뚝 위에서 90여일째를 보내던 때다. 김씨는 자신이 담당한 라디오 프로그램 전화인터뷰 중 굴뚝 위 홍씨를 처음 알게 됐다. 인터뷰 도중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홍씨에게서, “건강하다”는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생존권 투쟁에 나선 노동자는 막연히 괴로울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편견과 마주하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굴뚝 농성을 공부했고, 정씨와 함께 파인텍 농성장을 찾았다.

‘시민들이 거부감 느끼지 않는 노동운동’은 팀의 최대 고민이었다. 스타플렉스가 김씨 직장과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어 김씨는 2013년부터 시작된 파인텍 노동자들의 1인 시위를 종종 목격한 터다. 선명한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채워진 시위 피켓을 보고 공감하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김씨는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점점 노동운동이 일상과 괴리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조끼 입고 ‘투쟁’ 외치는 노동운동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시민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팀은 손편지가 노동과 일상, 굴뚝과 지상을 잇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 정씨는 “어린 시절 국군 장병 위문편지를 쓸 때, 군대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도 막상 편지를 쓰게 되면 군인 입장을 되새겨 보게 되지 않나”라며 “편지를 쓰는 동안만큼은 굴뚝 위 노동자 처지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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