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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심판대 앞에 선 ‘법의 지배자’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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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심판대 앞에 선 ‘법의 지배자’ 김기춘

입력
2017.01.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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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미스터 법질서’가 결국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해박한 법률지식과 탄탄한 논리로 법망을 잘 빠져 나간다는 의미에서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 별명까지 얻은 그였지만, 이번에는 사법처리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돼 온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 얘기다.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은 17일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김 전 실장을 피의자 신분(직권남용 혐의)으로 불러 조사했다. 사실 지난해 말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 당시에도 그를 둘러싼 의혹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뚜렷한 혐의점이 포착되지 않아 검찰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만큼 치밀했다. 박 특검이 임명 직후 가장 어려운 상대로 김 전 실장을 꼽으면서 “그 분 논리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박 대통령의 신뢰를 듬뿍 받는 ‘청와대 2인자’가 되기까지 김 전 실장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서슬이 퍼런 박정희 정권 시절 ‘엘리트 검사’ 코스를 밟으며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했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지냈다. 뒤이은 전두환 정권 때에는 검사장 자리에 올라 검찰 인사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검찰국장도 지냈다. 노태우 정권에선 검찰권력의 꼭대기인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에 올랐다. 공직 퇴임 후에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거쳐 3선 의원까지 됐다.

잠깐의 굴곡은 있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초원복집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법무장관 퇴임 직후인 92년 12월 11일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당시 부산 지역 기관장들과 비밀 회동을 갖고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는 말을 남겼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대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그는 이에 대해 미공개 회고록(본보 15일자 1ㆍ2면)에서 “지인들 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대화를 비밀 녹음해서 정치적 대책회의인 양 침소봉대하고 왜곡시켰다”고 썼다. “검찰이 소신 없이 사건화(선거법 위반 혐의 기소)했으나 훗날 (불법도청을 문제 삼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법원에서 사필귀정으로 공소가 기각됐다”고도 했다. “내 일생에서 가장 억울한 사건”이라고만 했을 뿐, ‘지역감정 유발’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김 전 실장은 회고록에서 검찰총장 시절 “내가 항상 법과 질서를 강조했기 때문에 기자들이 ‘미스터 법질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지금도 그것을 유쾌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시절(2013년 8월~2015년 2월), 정부 비판적인 문화ㆍ예술계 인사 지원배제 명단을 만드는 작업을 진두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형사처벌을 눈앞에 두게 됐다.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도 뇌물수수 등 혐의로 시점만 문제일 뿐 사법처리가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박정희ㆍ박근혜 대통령 일가와의 인연은 운명”이라고 했던 본인의 말처럼, 그도 박 대통령과 함께 벼랑 끝에 서게 됐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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