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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기자, 쓰지 못한 이야기] ‘기구한 인생’ 강씨 할머니를 만나다

입력
2016.11.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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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온다. 그들의 사연을 세상으로 끌어내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온다. 그들의 사연을 세상으로 끌어내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다.

여름이 채 지나지 않은 9월 어느 날 오전, 노원경찰서에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아가씨, 내 인생 얼마나 기구한지 좀 들어보소.” 여든 네 살 강모 할머니는 “어쩐 일로 경찰서에 오셨냐”는 어린 견습기자의 질문에 지난 60여년 간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을 학대하는 아들 이모(54)씨에게서 도망쳐 갈 곳 없이 경찰서 로비에 쪼그려 앉아있던 참이었습니다. 작은 가방에 한 벌 옷과 약간의 현금만 챙긴 상태였습니다. 그날은 아들이 아침부터 방에 들어와 자고 있던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흔들었다고 합니다. 방문은 며칠 전 술 취한 아들이 떼버린 상태였습니다. 할머니는 이런 식의 폭력이 10년 넘게 이어져왔다고 말했습니다. “한 번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려고 엎드렸는데, 갑자기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는 거야. 혹이 이만하게 나서는… 쓰러져서 병원을 갔지. 그래도 진단서는 안 뗐어. 아들이잖아, 아들이니까….”놀라서 입이 딱 벌어진 기자에게, 할머니는 “엄마라는 게 그래”라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21살, 강씨는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팔려가다시피 네 살 터울 이모씨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애인이 있었고, 시댁 식구들은 모두 술과 도박을 좋아했습니다. 아이 셋을 낳았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제대로 기를 수 없었습니다. 강씨는 1960년대로서는 마음먹기 쉽지 않았던,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이혼 얘기를 꺼내자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분노했을 겁니다. 새벽 시간을 틈타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고 아내를 무일푼으로 쫓아냈으니까요. 맨발로 쫓겨난 강씨에게는 단 한가지 목표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찾아와야 한다.’ 강씨는 시장에서 나물을 팔며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했습니다. “그때 난 힘든 줄도 몰랐어.” 아이들을 모두 데려오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너무 고생을 해서였을까요. 강씨에게도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넣었던 주택청약으로 서울 목동 아파트가 당첨된 겁니다. 몇 년 후 ‘교육도시’ 목동 아파트의 값이 천정부지로 솟았습니다. 이번엔 분당 아파트를 샀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강씨는 그야말로 부동산 부자가 됐습니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죠. 강씨 명의로 된 아파트 두 채가 생겼습니다. 그때쯤부터였습니다. “이제 좀 살 만하다”고 느낄 무렵,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폭력이 시작됐습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 돈이었습니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살아가던 아들은 종종 어머니 강씨에게서 돈을 훔쳐가곤 했습니다. 강씨는 아들이 언젠간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믿고 이를 눈감아줬습니다. 돈벌이를 위해 영업용 택시도 사줬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습니다. 3년 전 중국동포인 부인과 살림을 차린 후로는 강씨 명의로 된 집을 강제로 팔아버리기도 했습니다. 모시고 살겠다며 강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후로는 눈에 띄게 폭행이 잦아졌습니다. 그래도 강 할머니는 이를 참았습니다.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그것도 다 나 때문인데….”

의사와 사회복지사, 심지어 경찰까지 형사 고소를 제안했지만 할머니는 아들에게 차마 전과를 남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처벌불원으로 공소권 없음.’ 경찰 조서에 여러 번 이 문장이 쓰였고, 그렇게 10년이 흘러왔습니다.

올해 4월, 계속되는 아들의 폭언과 폭력에 할머니는 드디어 집을 나갈 결심을 했습니다. “아들에게 어차피 내 돈으로 살고 있는 거니까 전세금만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못 주겠다는 거야…” 강 할머니는 답답한 마음에 구청의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변호사는 할머니의 사정을 듣고 1억여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민사소송을 제안했습니다.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 형사 고소를 꺼리는 할머니에게 최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소송 사실을 안 아들은 또다시 할머니를 방에 가두고 때렸습니다. 그 날 아침, 몰래 집을 빠져 나온 강 할머니를 경찰서 로비에서 만난 이유였습니다.

드라마. 2시간여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떠오른 단어였습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10년간 학대한 아들 경찰에 고소한 할머니’, ‘어려운 아들 거뒀지만 10년간 폭행당한 노모’…. 취재를 위해 경찰서와 파출소, 노인복지센터, 구청, 심지어 할머니가 산다던 아파트 노인정까지 찾아갔습니다.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말하는 강 할머니의 인생은 한 단어로 표현됐습니다. ‘기구(崎嶇)하다.’

결과적으로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쓰지는 못했습니다. 형사소송이 아니라 민사소송이었고 소송 상대방인 아들의 입장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찰팀에서 쓰기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였던 거죠.

못내 아쉬웠지만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쫓아다녀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기자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취재해야겠죠. 그때쯤이면 이 정도의 사연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강 할머니는 제게‘처음으로 인생을 다 보여준’ 취재원으로 기억될 겁니다.

아, 할머니는 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요양원에 무사히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부디 그곳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평생을 괴롭혀온 폭력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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