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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어느 시장님의 원초적 ‘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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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어느 시장님의 원초적 ‘욕설’

입력
2017.04.2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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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야 이XXX야!

B : 이 놈 봐 이거… 욕을 하고 덤벼

A : 야 OOO, 야 임마… 야마가 돌아서

B : 기가 막혀서

뜬금없이 누구의 대화냐구요? 10대 초등학생이 친구들과 오간 욕설이 아닐까 생각하셨다면… (서글프지만) 틀렸습니다. 공재광 경기 평택시장과 김선기 전임 시장간 낯뜨거운 통화 내용의 일부였습니다. 기자처럼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장의 품격과 수준이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공 시장은 지난 2014년 7월 취임 이후 이른바 ‘인(in) 서울’ 대학생을 위한 장학관 설립을 약속했습니다. 젊은 층과 학부모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노림수’라 할 수 있겠죠. 일부 학부모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공 시장은 120억 원을 들여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150~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평택학사’를 만드는 밑그림을 만듭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에 시의회가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공 시장이 소속한 자유한국당과 경쟁하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 7명, 자유한국당 7명, 바른정당 1명, 국민의당 1명 등 모두 16명으로 구성돼 야당이 거부하면 예산을 마음대로 통과시킬 수 없는 구조.

결국 공 시장의 구상은 지난해 12월과 지난 4일 등 연거푸 두 차례나 좌절됐습니다. 시의회가 관련 안건을 부결시킨 것이죠. 이유는 학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 지방대에 진학한 학생 등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 시장은 시의회가 자신의 발목을 잡은 데 대해 지난 선거 경쟁상대였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선기 전 시장이 개입했다 생각했나 봅니다. 자신의 사업에 부정적인 김 전 시장이 시의원들을 뒤에서 조정한 결과 아니겠느냐는 것이었죠. 그래서 지난 12일 밤 김 전 시장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따지며 욕을 내뱉은 것인데, 공 시장은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이틀 뒤인 14일 공개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김 전 시장이 그와의 통화를 녹음한 파일이 유출돼 ‘사퇴론’이 불거지는 등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현직 시장이 전화를 해 욕을 퍼부으니 당혹스러운 김 전 시장으로선 증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 있겠다,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만… 어찌됐든 공 시장이 자신의 정책을 두고 상대와 끝까지 토론하고 설득하려는 민주적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아이들보기 부끄럽다는 시민이 적지 않습니다. 굳이 장학관에 들어가 책을 읽지 않더라도, 어른들의 이런 행태 하나하나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 학생들이 많을 테니까요.

사실 공 시장 개인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공 시장은 2014년 7월 시장에 취임하면서 선거운동을 도운 조카(31)를 7급 별정직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 수행 비서로 2년여 동안 근무시켜온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6,7월 국회의원들의 친인척 ‘셀프 채용’이 논란이 될 때인데요, 공 시장은 ‘시민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고 이 조카는 지난달에서야 시장 비서실을 떠났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흙수저’ 들을 공분에 빠뜨린 공 시장이 욕설까지 해대며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사업이 경쟁에 지친 학생들을 위한 장학관 건립이라니,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공 시장이 모르지는 않았겠죠? 대학생들은 소수가 이용할 장학관보다는, 힘없고 빽 없는 사람도 원칙과 상식 지키면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는 그런 ‘공정한 세상’을 더 원하는 것을요. 물론 그런 토대 위에 장학관 제공 등 다양한 지원이 있다면 ‘금상첨화’ 겠지요.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공재광 경기 평택시장. 평택시 제공
공재광 경기 평택시장. 평택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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