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정상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최첨단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 간 세기의 대결 1국이 이 9단의 충격적 패배로 끝났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류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뜨린 역사적 순간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나, 바둑은 그 동안 컴퓨터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천문학적 경우의 수를 가진 데다 직관과 감각,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미해야 하는 영역이어서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우위일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이 때문에 이번 알파고와의 대결을 앞두고도 이 9단의 완승을 점치는 바둑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런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알파고는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초반 포석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았고, 중반의 놀라운 행마로 이 9단을 흔들었다. 이 9단은 종반 끝내기에서 미세한 만회를 기록한 것도 잠시, 끝내기까지 탄탄하게 버틴 알파고에 돌을 던져야 했다.
알파고는 통계적으로 역대 기사들이 가장 많이 둔 수를 선택할 것이어서 이 9단이 의외의 수로 판을 흔들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했다.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중국 판후이 2단과 가진 다섯 번의 대국에서 대체로 초반 포석에서 밀렸다가 판 2단의 중반 실수를 파고 들어 역전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이 알파고는 더욱 강하고 유연해졌다. 3,000만 건의 기보 데이터를 새로 분석하고 450만 번 이상의 대국을 소화하면서 스스로 학습 능력을 키워 자신의 약점을 틀어막은 셈이다. 이 9단과 알파고는 15일까지 네 차례의 대국을 더 갖지만, 최종 승자가 누구일지는 별 의미가 없어졌다. 알파고의 학습ㆍ훈련 능력에 비추어 무적의 바둑 고수로 업그레이드 될 게 불을 보는 듯하다.
알파고의 예에서 보듯 이제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학습하며 추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영화 속에서나 보는 가상현실에 그치지 않을 것임도 예고된 셈이다. 이미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이 하던 단순작업을 대체하고 있으며 머잖아 통역 법률 의료 등 전문직업까지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인공지능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대될지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달을 무조건 우려할 것만은 아니다. 알파고의 승리는 집단지성이나 빅데이터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인간의 승리다. 막연한 우려보다는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가는 게 급하다.
한편으로 산업적 관점에서는 국내 인공지능 연구의 진작이 시급하다. 이번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의 진화를 위한 각국 경쟁에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알고리즘으로 인간과 유사하게 컴퓨터프로그램을 구현하는 학습방법인 ‘딥 러닝’에 기반한 인공지능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다. 선진 각국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사물인터넷과 가상현실(VR), 지능로봇, 자율주행자동차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아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우리도 삼성과 현대차, 네이버, 카카오 등이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나서 있지만, 글로벌 기업에 비하면 초보단계다. 정부의 체계적 정책지원과 기업의 적극적 투자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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