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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갈 순 없지 않나

입력
2017.12.2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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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 일정을 취재하던 청와대 사진기자 2명이 중국 경호요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문 대통령의 일부 극성 지지층 사이에선 자국민에 대한 부당한 폭행에 항의에 공감하기 보다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다”는 주장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넘쳐난다.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출신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 언론은 대통령 경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중국 측) 경호원을 칭찬해야 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는 나중에 SNS로 소식을 접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군색한 변명을 대고 글을 삭제했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을 아낀다는 사람들이 자국민이 당한 피해에 공감하기 보다, 피해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행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취재 준칙에 따라 대통령 행사를 취재하던 중 중국 경호요원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이들에게 “너희들이 한중 정상회담을 망쳤다”고 비판하고, 부당한 폭력을 행사한 중국 경호요원을 칭찬하는 세태라니. 공감 능력을 상실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킬킬거리는 모습이 중국에서 당한 무례보다 더 큰 생채기로 남는다.

중국 방문에 동행한 기자단은 나라를 대표한 취재진이다. 특별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이번처럼 대통령 행사에 풀(pool)단 취재를 할 경우 대통령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제한된 인원이 정확한 기사 작성을 위한 재료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을 아는 이들마저 피해 기자와 언론에 혐오적인 표현을 쏟아내는 것은, 언론이 문 대통령의 비판에 열중하고 있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어려움에 직면한 이유가 언론 탓이라고 보고, 문 대통령을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비판 언론에 적대적인 인식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만의 성을 쌓으면서 모든 판단의 기준은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부로 귀결된다.

사건이 발생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와대 기자단과 해외 수행 기자단 제도의 폐지를 청원한다”는 요청이 올라왔다. 일주일 만에 요청이 6만명을 넘겼으니, 이런 추세라면 공식 답변 기준인 ‘30일 이내 20만명 청원 요청’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청와대가 이런 요구까지 답변에 나서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문제는 이들의 타깃은 언론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당은 기본이요, 여당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이 비일비재하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 대통령과 경쟁했던 안희정 충남지사는 한 강연에서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는데 네가 왜 문제를 제기하느냐’라고 하면 우리 공론의 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강연 전반에 걸쳐 문재인 정부를 높이 평가했음에도 SNS에선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졌다. 안 지사가 문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있다는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정치권마저 이 같은 행태에 전염되는 듯한 조짐은 더욱 불안하다. 여당 일부 인사들이 내년 지방선거 출마자로 거론되는 유력 인사 중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과 경쟁했거나 비판적 입장을 취한 인사들을 겨냥해 ‘편 가르기’ 프레임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권력자라고 해도 ‘권력’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어느 정부에서든 정부 발표를 확인하고 설명이 부족하면 끊임 없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이다. 그간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순응했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정부에서 이러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비판하지 말고 입 닫고 있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권위주의 시절로 회귀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왜소하게 만들 뿐이다.

김회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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