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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외눈박이 공안시대를 지나며

입력
2015.02.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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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진태 검찰총장이 신년사에서 공안검찰의 기치를 높이 들더니, 급기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도 최근 취임사에서 공안검찰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헌법 가치를 부정하고 폭력과 테러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고자 하는 국가안보 위해세력은 초기부터 수사하고…” “노사 간 갈등도 노사의 자주적 해결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등이다.

있는 그대로 틀린 말은 없다. 공공의 안전을 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공안의 중요성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공안 검찰은 국민과 시대의 눈높이에 맞춰 바뀌지 못한 채, 과거의 음습함을 벗지 못하고 권력 지향성은 독재시절 못지 않게 강화된 듯 하다.

공안 검찰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균형감각의 상실에 있다. 어느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공안검사가 (공안 사건의 한 축인) 노동자하고 밥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솔직히 공안검사 사람취급 안 해요”라고 말했다. 그의 언사가 지나치게 감정적인 면이 있다고 해도, 외눈박이 공안 검찰의 단면을 드러내준다. 검찰은 불법파업 노동자나 집회 참여자를 엄벌하겠다고 틈만 나면 공언하지만, 임금 체불이나 부당노동행위 등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을 위반한 경영자를 엄벌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엄연히 공안수사 대상인데도.

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대공 사건은 어떤가. 검찰은 국가정보원이 수개월 동안 피의자성 참고인을 감금하고, 변호사 조력도 없이 진술을 받은 것을 아직도 옹호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보여준 공안 검찰의 막무가내 모습이다. 1ㆍ2심에서 간첩혐의 무죄가 선고됐고, 법원에서는 형사소송법을 어긴 국정원의 불법 조사가 인정됐는데도 말이다.

이런 검찰을 지켜보다 보면, 역사는 퇴보할 수 있으며 현재 내가 그것을 목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50년 전 공안검사들이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의 사건 조작을 견제하고, 서슬 퍼런 시대에 무고한 피의자들을 살렸던 것과 비교하면.

1964년 중정은 도예종 등 57명의 혁신계 인사와 언론인ㆍ교수ㆍ학생이 인민혁명당을 결성해 국가전복을 음모했다고 1차 인혁당 사건을 발표했다. 조작 의혹이 짙었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 외에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기소를 거부했다. 검찰 고위층이 기소하게 하자 서울지검 공안부 이용훈 부장검사 등 3명의 검사가 사표를 제출하며 반발했다. 재수사가 이뤄져 결국 반공법 정도만 적용해 법원에서 일부 인사만 최고 징역 3년 정도를 받았다. 중정이 10년 뒤 다시 들고나온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부와 재판부를 거치며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이듬해 형이 확정된 뒤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2차 사건이‘사법살인’의 악몽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은 1차 때와 달리 제대로 된 검사가 없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서울시 간첩 사건에서도 제대로 된 공안 검사가 있었으면 국정원의 불법조사를 걸러냈을 것이며, 재판과정에서 국정원이 증거조작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검찰은 증거조작을 몰랐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말이다.

공안 검사에게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선동을 밝혀내는 한편으로 국정원의 불법 수사를 견제하는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균형 감각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정권은 인사를 통해 공직사회를 길들인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유죄를 이끌어 냈음에도 직접 수사를 하지 못하는 고검검사로 2년째 유임됐다. 반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 피의자 유우성씨를 기소했던 당시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은 사건이 무죄가 났지만 주요 공안사건들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승진했다. 꼭 인사가 아니더라도 집권자의 의중을 온몸의 세포로 감지하는 공직사회가 얼마나 뻔뻔하고 때로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는 짧지 않은 기자생활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특히 집권자가 공공선을 위한 계획과 철학, 공감능력이 부족할 때는 더욱 그렇다. 결론은 결국 청와대로 모아진다. 청와대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 공안 검사 개개인의 성찰이라도 기대해보는 수밖에….

이진희 사회부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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