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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연습 없는 귀촌 칸타타

입력
2018.04.06 1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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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강을 건너 인생의 높이가 버거울 때면 한번쯤 귀촌을 꿈꾼다. 개여울이 살아 있는 목가적 풍경, 여유가 묻어나는 낭만과 휴식, 자연과 호흡하는 힐링, 인심 좋은 마을, 상상 속 수채화는 아름답다.

귀농ㆍ귀촌을 한 선배들은 시골에 관해 “다양한 시각과 희로애락이 공존한다”고 조언한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농사로는 소득 올리기가 만만치 않다고 알려준다. 원주민과의 갈등과 왕따는 가족 내 불화로 이어지고 대안 없는 삶은 가족 해체를 부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농산어촌으로 이사하는 귀농, 귀산, 귀어, 귀촌을 ‘사회적 이민’이라고 경고한다. 이민에는 경제적 고통과 문화적 충격, 생활의 불편이 따른다. 불혹을 알 만한 연배이지만 무엇이 급한지 쉽게 결정하고 매몰차게 도시를 떠난다. 서툴고 준비 없는 실행을 보는 원주민은 또 다른 도시민의 좌충우돌 모험이라고 혀를 찬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마을마다 뿌리내린 가치 기준과 정서에 익숙하지 않다.가족 동의 없는 만용으로 감행한 도전은 부자연의 연속이다. 시간은 고생으로 물들고 신선함은 식상함으로 찌든다. 계절이 흐르고 몇 번의 봄을 맞이하면 꽃과 나비도 예쁘지 않다. 가슴 속 철석 같은 의지도 장마 뒤의 잡초를 이기지 못한다. 꿈에서조차 싫었던 역귀농을 고민한다.

귀촌인은 도시의 동(洞)부에서 시골 읍면(邑面)부로 이주한 지 만 5년이 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여기에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거나 농지원부를 가지고 농업을 하면 귀농이 된다. 반면 귀농ㆍ귀촌 생활이 힘들거나 사정이 생겨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현상을 ‘역귀농’이라고 한다.

정부는 역귀농을 10% 미만이라고 추정한다. 대부분 만족하며 잘 산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지역의 귀농ㆍ귀촌 관련 단체는 적어도 20~30%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확한 통계는 인구 이동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만이 알 것이다.

정든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핵심은 개인만 준비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예산, 조직, 프로그램 정비로 도와야 하고, 다양한 NPO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귀농어촌 인구는 49만7,000여 명이다. 귀산인 통계는 아예 없다. 이중 도시에서 100시간 이상 기본교육을 받고 시골로 내려가는 인구는 매년 1만 명도 안 된다. 시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리하게 감행한 귀농생활. 누구나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원하지만 학습 없는 적응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14조원이 넘는 농식품부 예산 중에 순수 귀농예산은 130억 원이 못 된다. 1%도 아닌 0.1%로 만드는 안타까운 귀농정책, 어설픈 이주자들은 스스로 무능을 탓하며 눈물로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 사람의 실패는 개인의 문제지만 다수의 부적응은 시스템의 문제다.

한 해 50만 명이 귀농산어촌 하는 시대. 정부의 역할도 양에서 질로, 가치 재정립으로 옮겨가야 할 때다. 경제부처인 농식품부, 해수부, 산림청, 농진청은 귀농, 귀어, 귀산인의 소득 증진에 힘을 모아야 한다. 행안부도 적극적으로 귀촌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인구이동과 등록을 관장하는 주무부서가 도시에서 시골로 사회적 이민을 떠나는데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 것은 국민정서에 어긋난다. 엄격히 말해 소득대책은 경제부처, 시골생활 준비와 적응은 행안부의 몫이다.

지방자치와 지역발전을 주관하는 행안부의 ‘모르쇠’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인구 이동에 따른 국가비전과 귀촌 정책을 만들고 전략과 목표를 가꾸자. 인구 소멸 1순위 경북 의성이 살아날 것이다. 귀농ㆍ귀촌은 100세 시대, 노후 자립과 자조적 복지를 실천하는 시민혁명이다. 연습 없이 노래해도 아리랑처럼 정겨운 시스템을 키우자.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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