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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효도한다” 효도 新풍속도

입력
2017.05.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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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기념으로 어머니와 해외여행

스마트폰에 못생긴 표정 사진 전송

친척들 모임서 밥값 척척 계산도

김준병씨 모자가 지난해 9월 스위스로 떠난 효도 여행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김준병씨 제공
김준병씨 모자가 지난해 9월 스위스로 떠난 효도 여행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김준병씨 제공

직장인 김모(27)씨는 최근 아버지(57)의 스마트폰을 각종 ‘짤방’(짤림 방지의 줄임말로, 편집을 하거나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찍어 표정 등이 매우 웃긴 사진 등을 통칭)으로 꾸미는 게 중요한 일상사가 됐다. 여동생과 함께 일부러 못생긴 표정을 지은 사진을 찍은 뒤 메시지와 함께 보내는 이른바 '사회관계망서비스(SNS)형 효도'다. 아버지는 어느덧 자매의 SNS 효도에 매료돼 이제는 직접 딸들의 엽기 짤방을 직접 수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입을 벌리고 자는 모습이나 화장 지운 얼굴 등을 따로 모아 저장해 놓고 심심할 때 열어보는 식이다. 김씨는 "행여라도 유출되면 큰일이지만 아버지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효도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준병(29)씨는 입사 첫 해였던 지난해 9월 어머니 오모(58)씨와 7박8일 스위스 여행을 떠났다. 형과 김씨가 각각 300만원과 200만원의 여행 경비를 갹출, 어머니를 위한 ‘효도여행’을 준비한 것. 8일간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은 김씨가 그 동안 실천한 가장 큰 효도가 됐다. 김씨는 “어머니는 아직도 스위스 여행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신다“며 자랑했다.

저녁에는 잠자리를 봐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리는 혼전신성(昏定晨省)의 효도는 이제 옛 이야기다. 유산을 물려 받은 장남이 부모님과 함께 살며 극진히 모셔야 한다는 전통적인 효 인식도 옅어졌다. 젊은 세대들은 부모 봉양에 초점이 맞춰진 과거 효 관념에서 탈피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다. 대학내일20대 연구소가 전국의 20대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58.9%가 ‘부모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을 효의 가장 큰 의미로 꼽았다. 반면 ‘부모의 미래(노후)를 책임지는 것’이라는 답변은 18.7%에 머물렀다. 향후 부모님과 함께 가장 하고 싶은 활동으로는 ‘국내ㆍ해외 여행하기’가 절반에 가까운 49.2%로 1위를 차지했다.

조여은(33)씨도 가장 효과적인 효행으로 가족 여행을 꼽았다. 조씨 가족은 5년 전부터 가족들과 여행을 갈 때마다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있다. 가족끼리 단합과 추억을 위해서다. 조씨는 “부모님과 낯선 곳으로 떠나 추억을 공유하며 평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진정한 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동생과 조씨의 서울 타향살이로 느슨해진 가족간 유대를 동여매준 것도 가족여행이다. 조씨는 “늘 뚜렷한 목적지 없이 가장 싼 티켓을 끊는다”며 “어디로 가느냐보다 가족들과 순간을 공유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1회성 퍼포먼스가 부모들에게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직장인 임모(31)씨는 “친척들 앞에서 내 신용카드로 직접 계산해 대접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가장 뿌듯해 하신다”고 귀띔했다. 임씨는 “모임에 나가거나 명절 때 서로 자기 자식을 자랑하는 ‘자식 배틀(전투)’을 벌이시는데 부모님이 뭐라도 내 세울 만한 것을 만들어 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주기적으로 용돈을 드리는 일, 생활비를 부담하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남들 앞에서 “내 아들이 이만큼 번다”라고 과시할 기회를 드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임씨 생각이다.

정서적 유대나 교류를 중시하는 경향은 시부모나 처가를 대하는 자세에서도 비슷했다. 결혼 2년 차 새댁인 이모(29)씨는 “시부모님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은 따로 없지만 집안 대소사를 빠뜨리지 않는 것, 건강검진 챙겨드리는 것, 문자를 자주 보내드리는 것만 해도 꽤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반면 부모의 노후 생활을 자식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은 강하지 않았다. 20대의 52.3%는 ‘부모님의 노후 부양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고, ‘부모님의 노후 부양을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72.6%에 달했다. 그러나 각 주체별로 노후 부양 책임 비율이 얼마여야 하느냐는 질문의 답을 평균한 결과, 부모 스스로의 책임 비율이 38.9%로 가장 높게 나왔다. 20대 본인의 부양 책임 비율은 32.8%, 사회ㆍ국가의 책임 비율은 28.3%로 집계됐다.

이 같은 의식의 배경에는 ‘부양의 여유가 없다’, ‘부양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두 가지 관점이 자리잡고 있다. 임모(35)씨는 “여유만 있으면 전부 책임지고 싶지만 요새는 맞벌이를 해도 경제적 부담으로 육아도 포기하는 시대”라며 “과거처럼 형제가 많으면 십시일반 모아 부모를 봉양하겠지만 형제가 없거나 둘뿐인 요즘엔 부모 봉양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정모(32)씨는 “부모님이 받으실 국민연금ㆍ개인연금 등을 고려하면 월 50만원 정도의 부양비만 책임져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부양 개념이 사라지고 정서적 교류가 대두되는 것은 당장 부양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청년 세대가 택한 차선책인 동시에, 가족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돌봄’ 책임이 확대돼야 한다는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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