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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약한 정부, 가난한 나라

입력
2015.10.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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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코틀랜드에서 경찰이 협력자이며 내가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라고 배우며 컸다. 19세에 미국에 처음 갔을 때 타임스스퀘어의 교통경찰에게 가장 가까운 경찰서를 물어봤다가 외설적인 욕설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해보라. 혼돈에 빠져 있던 나는 그만 고용주의 긴급한 문서들을 우편함처럼 생긴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말았다.

유럽인은 미국인보다 정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 미국인에게 자신이 사는 지역, 주, 연방 정치인들이 실패하고 인기가 없는 일은 일상적이다. 하지만 미국의 여러 정부는 세금을 걷고 그 대신 미국인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부유한 나라들의 많은 시민들처럼 미국인들은 법체계와 규제장치, 공립학교, 노인들을 위한 의료와 사회보장, 도로, 국방과 외교, 그리고 의료를 비롯한 연구 분야에서 국가의 많은 투자를 당연시 여긴다. 이런 공공 서비스 모두가 좋은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이 잘못 쓰인다고 느끼는 경우 격렬한 공개토론을 한다. 또 정기적으로 선거를 통해 사람들은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다. 최소한 효과적인 정부가 있는 부유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도 분명해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정부는 세금을 걷거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이 모자란다. 부자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정부와 피통치자 사이의 협약은 빈곤국가들에서는 대체로 찾아볼 수 없다. 그 뉴욕 경찰은 무례했지만(그리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느라 바빴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경찰들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사람을 약탈하고 갈취하며 권력자들을 대신해 박해한다.

심지어 인도와 같은 중간소득 국가에서도 공립학교와 공공보건소에서 집단 결근(처벌도 받지 않는다)이 흔하다. 개인 의사들은 사람들이 원하는(것으로 생각하는) 주사, 정맥링거, 그리고 항생제를 주고 있지만 정부는 그들을 규제하지 못한다. 게다가 많은 의사들이 무자격으로 일한다.

개발도상국 전역에서 아이들은 외래성 질병이나 불치병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장소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숨진다. 아이들은 우리가 거의 100년 전 치료법을 알았던 아주 흔한 유아기 질병 때문에 죽는다. 일상적인 모자 보건을 제공할 능력을 갖춘 정부가 없다면 이 아이들은 계속해서 사망할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능력 없이는 규제와 집행이 적절히 기능하지 못하고 사업체들도 운영이 어렵다. 민사법원을 제대로 운용하지 않으면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도록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정부 능력의 부재, 다시 말해 부유한 국가의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공공서비스와 보호의 부재는 세계 전역의 가난, 박탈의 주요 원인들 중 하나다. 활동적이고 착실한 시민들과 함께 움직이는 효율적인 정부 없이는 지구적 가난을 없애는 데 필요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불행히도 부유한 나라들이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가는 대외원조는 보건 분야에서 특히 좋은 평판을 얻는다. 그런 원조가 없었다면 죽게 됐을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외원조는 동시에 해당 지역 정부의 능력이 나아지는 걸 저해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정부가 직접 원조를 받고 그 원조가 대부분 (종종 전체 금액의 절반 이상이) 금융 비용으로 흘러가는 나라들에서 가장 명백하다. 대부분은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그런 정부들은 시민들과의 협약, 의회, 세금징수 체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정부가 유지되는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그것은 기부를 한 국가들이다. 그러나 심지어 이조차도 실제로는 실패한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을 돕기 원하는)자국 시민들의 압력을 받은 기부 국가들은 가난한 나라 정부들이 받기 원하는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지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건너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틀림없이 즉각적인 효과는 더 좋을 것이다. 정부 대 정부 원조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의 닿지 않는 나라에선 특히 더 그렇다.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 빈곤선인 하루 1달러까지 주는 데는 놀랄 만큼 적은 양의 돈이 든다. 부유한 나라에서 성인 1인당 하루에 약 15센트 정도만 걷으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해결 방안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 정부가 필요하다. 이 순환 고리에서 정부를 빼면 단기적으로 상황을 개선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진 못할 것이다. 가난한 국가들은 해외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의료 서비스를 영원히 갖지 못하게 된다. 원조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한 것, 현재와 미래를 그들과 함께 할 효율적인 정부를 약화시킨다.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일들을 우리 정부에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원조를 줄이고 무기거래를 제한해야 한다. 부유한 나라의 무역과 보조금 정책을 개선하고, 원조와 관련이 없는 기술적인 자문을 제공하며, 부유한 사람들과 무관한 질병들을 고치는 더 좋은 약을 개발해야 한다. 이미 약해진 정부를 더욱 약하게 만들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ㆍ국제학과 교수,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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