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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열 영어] Legal Scope and Language(법조문과 언어)

입력
2016.12.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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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용어만큼 비효율적인 언어는 없다. 1990년대에 미국 법조계와 언어학계에서 한창 논쟁 되기도 했다. 우리말에서도 ‘점유이탈횡령죄’라고 말하면 일반인들은 그 개념을 단박에 이해하지 못한다. 물건이 주인 통제를 벗어나는 건 ‘물건이 스스로 이탈한 것’도 아니거니와 ‘점유’라는 말도 ‘원 소유주의 점유’라는 말처럼 장황하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주워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의미라면 간단히 ‘습득물 횡령죄’라고 하면 된다. ‘점유이탈’보다 ‘습득물’이 더 쉽고 정확하다. 남의 재산을 맘대로 도용한다는 ‘횡령’만 그대로 살리면 된다.

모호한 표현으로 인한 사건은 지난달 영국의 고등법원(High Court of Justice)에서 실제 벌어졌다. 소위 ‘Dooba vs. Asda’사건의 판결문(http://www.adamsdrafting.com/wp/wp-ontent/uploads/2016/12/dooba_v_asda.pdf)을 보면 재판부가 죽을 고생을 했고, 오죽했으면 판사 스스로가 ‘It seems to me ~’나 ‘To my mind’ 같은 주관적 판단의 표현을 써가며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려 했을까 싶다.

마치 문법 시간, 독해 훈련 시간 수준의 판결문에서 ‘if all of the Conditions have not been discharged in accordance with this Schedule by the Longstop Date’라는 어구를 두고 판사는 조건절의 주어와 술부를 다시 해석한다. 또 동사 ‘decimate’를 놓고 원래 사전적으로는 ‘로마시대 일벌백계 차원에서 10분의 1을 죽이는 것’이란 의미였는데, 현대 영어에서는 그냥 90%를 죽이는 것으로 해석한다. 판사가 인용한 문구 ‘One example is decimate, which in ordinary usage is now more likely to refer to the deaths of 90% than to the deaths of 10% of the population or group in question’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 hopefully라는 부사를 두고 재판부는 Birmingham으로 갈 때의 ‘기대감’이 아니라 가보고 싶다는 표현으로 해석했다. 이 지면에서 hopefully의 용법에 대한 여러 얘기를 했듯, 법정에서 다시 의미가 정리된 셈이다.

또한 판사가 인용한 “I agree with Asda that the formula ‘if all … have not …’ is sometimes used to mean ‘if not all … have’, but I do not accept that this has become its primary meaning” 같은 문장을 보면 ‘All of the meat wasn’t fresh’ 같은 문장은 ‘모든 고기가 신선하지는 않았다’는 다소 모호한 표현이어서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모름지기 언어는 쉽고 간결해야 하고, 특히 법조문은 명쾌한 표현을 써야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국가 발전에 도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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