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한국 사회에서 이 만큼 연(緣)의 힘을 보여주는 말이 없다. 대표적인 연이 지연, 혈연과 함께 학연이다. 전문가들조차 3대 연의 작용이 익숙한 것에 끌리는 인간 본성이라 근본적으로 막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이 가운데 같은 고교, 같은 대학을 따지는 학연은 사실 편리하고 또 단단하다. 경북대 엄기홍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잘못된 일이 발생해도 선후배를 통한 압박이 가능해 집권자 입장에서는 사안 단속이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선후배 관계라면 배신당할 위험이 적고 서로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연의 부작용은 이런 편의성을 넘어선다. 한 정부에서 능력이 배제된 연에 끌린 인사는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병폐가 생겨도 문제삼지 않아 부패를 드러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데 평소 형님, 동생 하는 사이에서 제대로 된 비판이 나올 수 없고, 결국 정책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연에서 제외된 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또 다른 문제다. 도덕성이나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배제되면 ‘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과 불필요한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객관적 잣대에서 벗어나 연을 강조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에 대한 기대감을 해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인사시스템의 투명성이 우선 꼽힌다. 청와대 비서진, 내각이나 정부기관 수장을 뽑을 때 철저한 능력 검증으로 연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기홍 교수는 “도덕성과 능력 부족이 드러나도 임명이 강행되는 게 우리 현실”이라며 “미국 인사청문회처럼 보다 엄밀하게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연 깨기가 대학개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맥의 뿌리인 대학 자체가, 대학 서열화가 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특정대학 출신이 더 우수하다는 편견이 학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철희 소장은 “지금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라며 “대학 서열화를 없애는 게 우선이고, 실력 위주로 선발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고 했다.
대학에서 공직에 걸맞는 인재상을 길러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직자들이 기본 소양을 갖추게 되면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는 인재를 기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기홍 교수는 “학연과 지연에 기대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풍토를 바꿔 나가려면 대학에서 인성을 함양할 교육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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